“두목, 산다는 게 뭔지 알아요? 허리띠를 풀고 말썽을 만드는 게 바로 삶이지요. 산다는 게 곧 말썽이에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는 학교 근처에도 안 가봤지만, 어느 누구보다 많이 안다. 그의 말에는 사회 밑바닥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가 꿈틀거린다.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려. 그러면 알아요. 혹시 사람이 될지?” 소설의 화자이자 자신의 고용주인 ‘나’에게 충고도 서슴지 않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 얘기다.
책밖에 모르는 관념적 지식인인 ‘나’는 조르바에게서 “살아 있는 가슴과 야성의 영혼을 가진, 어머니의 자궁인 대지에서 아직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진짜 사나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기쁨에 겨워 “조르바의 학교에 입학해 위대하고 진실한 문자를 새로 배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나’에게 조르바는 인생학교다. 틀에 박힌 죽은 지식이 아닌 에메랄드빛 지중해 위에 쏟아지는 황금 햇살 같은 산지식을 가르치는 학교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이 가장 아름다운 예술임을 보여준다.
좁은 견문과 모자란 관심 탓일 뿐, 눈여겨보면 우리 주변에도 ‘조르바’가 적지 않다. ‘사박사박/장독에도/지붕에도/대나무에도/걸어가는 내 머리 위도/잘 살았다/잘 견뎠다/사박사박’. ‘눈’이란 시를 쓴 전남 곡성의 윤금순 할머니가 그 한 분이다. 가슴 속에 묻어 둔 팔십 평생의 고난이 달 밝은 밤에 하얀 눈이 되어 내리는 듯한 시다. 이보다 진솔하고 정갈한 고백이 있을까 싶다.‘이번 가을 놀이 때 가? 안 가?/간다고? 부부동반 혀 갈 거지?/남새스러워?/뭐가 남새스러워/웬만하면 마누라랑 같이 가’. 충남 보령에 사는 임양빈 할아버지의 구술시가 주는 감동도 이에 못지않다.
부산 감천문화마을에도 ‘조르바’가 있다. ‘남한테는 백 점 나한테는 빵 점’(강길순 지음) 등 그림책 6권을 펴낸 할머니 여섯 분이 그들이다. “우리 영감이 구리무를 사 왔어. 그게 뭐라고 시누이가 질투하더라고. 내가 시집와서 날로 번창하니까 좋았겠지. 내가 곱기도 했고.” 책에는 6·25전쟁 피란살이 등 원도심 달동네 1세대의 애환이 오롯이 녹아 있다. 때 묻지 않은 인심이 애틋하고 정겹다. 잘 가꾸고 이어가야 할 우리의 ‘오래된 미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