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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학 철학과의 애잔한 퇴장을 보며 /이거룡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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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2-18 19:08:4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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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상아탑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하얀 크림색 쌍둥이 탑을 상아탑이라 부른다고 들었다. 마치 진흙탕 연못에 핀 연꽃처럼,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고고한 자세로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대학을 그렇게 불렀다. 우뚝 솟은 탑처럼, 대학이란 세간의 삶에서 초연한 순수 학문의 표상이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과연 지금 우리나라에는 상아탑이라는 말에 걸맞은 대학이 몇이나 될까? 이미 이 물음은 진부하다. 그럼에도 다시 이 진부한 물음을 거론하는 것은 대답을 듣자는 것이 아니다. 묻고 또 묻는 것은 변하더라도 가끔은 지나온 발자취를 뒤돌아보며 새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대학이 변했다.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며, 존재는 변화를 통하여 목숨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존재 자체가 곧 변화라 해도 무방하다. 물론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느냐, 또는 타의로 변화의 대상이 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변화가 살아 있는 유기체의 존재방식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물론 살아 있음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특히 사람이 그렇다. 살아 있는 몸과 마음이 있으므로 희망하는 가치가 실현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살아 있음은 모든 존재의 출발이며 토대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구지레한 목숨을 유지하자는 말이 아니다. 때로는 차라리 세월을 따라가게 하는 것이 바랄 만한 쾌(快)한 일일 수도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학은 어떤가? 우선은 살아남는 일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특히 스스로가 변화의 주체라기보다는 타의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대학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우선은 살아남아서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대개 변화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붓다는 무상(無常)이 고통이라 했으며, 생로병사는 그 대표적인 예다. 물론 생로병사 그 자체가 고통일 리는 없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자연법칙이며 진리다. 그럼에도 생로병사가 우리에게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상한 것을 영원하다고 고집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무상에 대한 우리 반응이 늘 고통만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또한 무상한 것을 아름답다 한다. 산이 시멘트 건물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시사철 변하기 때문이다. 사시사철 흰색에서 검은색 사이의 옷만 입고 다니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대개 직장인은 매일 다른 색깔 넥타이라도 매고 출근해야 예의라고 들었다. 변화가 예의로, 아름다움으로 수용된다는 말일 것이다.

무상한 것을 무상한 것으로 알 때 고통이 끝난다는 붓다의 가르침을 들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학에서 철학과의 퇴장은 애잔하다. 이제 지방 사립대학에 철학과가 남은 곳은 거의 없다. 그 많던 철학과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나도 한때는 철학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른바 철학에서 수행으로 나의 무게 중심을 옮긴 지 이미 오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학에서 철학과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현실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철학과의 퇴장이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은 단지 무상한 것을 무상한 것으로 알지 못하는 범부의 감상인가?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후배 교수가 보인 교내 이동경로는 마치 비행기 블랙박스처럼, 지방 사립대학 철학과의 애잔한 퇴화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는 본래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수년 후 철학과가 없어지고 문화콘텐츠학과 생기면서 그는 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됐다. 그 후 문화콘텐츠학과는 역사학과와 통폐합되었고, 그는 다시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됐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금년부터 학부제가 시행되면서 역사문화콘텐츠학과는 역사문화콘텐츠학부가 되고 이 학부는 역사학전공과 영상스토리텔링전공으로 나뉘어졌다. 지금 그는 역사문화콘텐츠학부 영상스토리텔링전공 교수다.

어제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물었더니,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내년부터는 역사문화콘텐츠학부가 역사영상콘텐츠학부로 바뀔 겁니다.” 정말로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퇴화해버린 인간의 꼬리뼈처럼, 그가 몸담았던 철학과는 그렇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퇴장하고 없는가?

선문대 대학원 통합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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