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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빅뱅(big bang) 이전엔? /조송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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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2-17 19:26:44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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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대중강연 자리에서 청중으로부터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빅뱅 이전에는 뭐가 있었나요?” 일반인들이 우주에 관해 갖는 원초적인 호기심이자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이다. 일개 ‘과학 커뮤니케이터’에 불과한 필자가 감당하기에는 애초 무리다. 과학저술가로 유명한 김상욱 교수가 임기응변으로 했다는 썰렁 개그 답변을 들려준다. “‘빅뱅’ 이전에 ‘동방신기’가 있었잖습니까?”

‘빅뱅 이전엔?’과 비슷한 질문은 옛날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로마제국 시대에 사람들은 “태초 이전에는 하느님이 무엇을 하셨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 이에 교부들은 “그때는 하느님이 너처럼 골치 아픈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고 대답하곤 했다.

당시 히포의 주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에 나오는 얘기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대답은 여느 교부들과는 다르다. “나는 사람들의 질문에 ‘하느님이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는 식의 억지를 쓰지는 않겠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이라는 개념은 없다. 왜냐하면 시간 그 자체도 우주 탄생의 산물 중 하나일 테니까.”

얼마나 고품격의 멋진 대답인가. 사실 현대 물리학자들의 대답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리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빅뱅으로부터 시간과 공간이 탄생했다. 빅뱅 이전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 따라서 빅뱅 이전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 궁금증이 해소될 리는 만무하다.

물리학자들이 ‘빅뱅 이전엔?’ 물음에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물리학자 마르틴 보요발트는 ‘빅뱅 이전’이라는 책에서 과학적인 대답을 시도한다. 그는 물리학의 최전선인 루프양자중력 이론(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는 이론의 하나)을 통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우주는 수축과 팽창 사이를 무한히 순환한다. 빅뱅 이전엔 우주가 수축하고 있었다. 우주가 점점 작아지면 점점 더 뜨거워져 빅뱅 직전 상태까지 간다. 그 다음엔 극미 세계의 양자효과(양자요동)에 의해 다시 팽창한다.

빅뱅 이론은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태생적으로 가졌다. 부피가 없는 한 점(특이점)에서 우주가 폭발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골치 아픈 빅뱅을 아예 제거한 이론도 나왔다. 빅바운스(big bounce) 이론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주의 시작은 빅뱅이 아닌 빅바운스이다. 우주가 특이점에서 폭발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수축과 팽창의 순환을 거듭한다. 이 순환 메커니즘은 루프양자우주론과 비슷하다. 아인슈타인도 1930년대 빅뱅을 제거한 순환우주론(cyclic cosmology)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들 이론도 ‘빅뱅 이전엔?’ 질문에 속 시원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빅바운스나 순환우주는 어떻게 시작됐고, 그 이전은 무엇이었느냐는 새로운 질문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천재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생전 ‘빅뱅 이전’을 말했다. 타계 열흘 전인 2018년 3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스타 토크 쇼에서다.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진행자인 물리학자 닐 타이슨의 질문에 호킹은 “빅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고 말했다. 호킹은 그 근거를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우주의 무경계 조건을 적용하면 4차원의 우주 시공간을 2차원의 지구표면으로 치환할 수 있다. 자, 남극(South Pole)의 더 남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같은 이치로 빅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나름의 ‘논리적인’ 대답에 당시 사람들이 만족했을 것 같지 않다. 현대 물리학자들의 설명이 머리를 말끔하게 해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 시대의 대답 사이 우주에 대한 인식의 깊이와 폭은 다르다. 과학은 인류 인식의 지평을 넓혀 왔다. ‘빅뱅 이전엔?’ 이란 물음은 비록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는 못할지라도, 물음 그 자체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추동력인 것이다.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동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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