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도둑맞은 가난’ 조장하는 사회 /이경식

기생충 촬영지 관광 개발, “가난 상품화” 반발 빗발

상생·공존 가치 추구로 마을 공동체 보존해야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가난보다는 가난에 대한 시각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 가난은 제도를 바꾸거나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가난에 대한 시각과 태도가 그릇될 경우 제도 개혁 자체가 불가능해서다. 작가 박완서는 1975년 발표한 단편소설 ‘도둑맞은 가난’에서 그런 상황을 오롯이 포착했다. 봉제공장 여공인 소설의 주인공은 도금공장에 다니는 남자와 산동네 단칸 셋방에서 동거한다. 그녀는 가난이 싫어 목숨을 끊은 부모와 오빠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악착같이 살아간다. 연탄가스와 음식 냄새로 숨이 막힐 듯한 좁은 부엌을 견뎌야 한다며 스스로를 독려하는 그녀에게 동거남은 삶의 유일한 의지처다.

“난 부잣집 도련님인데, 아버지가 방학 동안 어디 가서 고생 좀 실컷 하고 오라고 무일푼으로 내쫓았어.” 그런 동거남이 가출했다 돌아와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부자들이 제 돈 갖고 무슨 짓을 하든 아랑곳할 바 아니지만,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자신에게 돈을 건네는 동거남을 내쫓은 주인공의 독백에는 상실감이 가득하다. 부자는 빈자를 한낱 가난 경험의 수단이나, 자신의 의지에 좌우되는 타율적 존재로 여길 뿐이어서다. 그 사회는 ‘도둑맞은 가난’을 조장한다.

이 소설이 출간된 1975년,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GNI)이 650달러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2019년에는 1인당 GNI가 그 50배인 3만2000달러(추산치)로 급증하는 등 생활수준은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빈자에 대한 인간적 예의는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빈부 격차의 확대 탓인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경제가 성장할수록 빈자의 자리는 줄어드는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이 분노했던 가난의 희롱을 넘어 가난을 상품화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는 게 그 증좌다.

서울시와 마포구, 경기도 고양시는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후 관광지 조성 계획을 밝혀 가난 상품화 논란에 불을 지폈다. 자하문 터널 등 주요 촬영지 4곳을 관광코스로 개발하고, 영화 속 기택(송강호 분) 가족의 반지하 주택 세트장을 복원해 체험관광시설을 만든다고 한다. 세계적 명성을 떨친 작품인 만큼 관광 효과는 클 터이다. 그러나 해당 지역 주민들의 생활은 구경거리로 전락할 처지에 놓인다. “누군가에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가난의 기억이 누군가에겐 상품이 되는 ‘가난 포르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15년 인천에서도 비슷한 가난 상품화 시도가 있었다. 동화작가 김중미가 인천의 가장 오래된 빈민촌인 만석동 달동네를 무대로 쓴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널리 읽히자, 관할 기초지자체가 ‘쪽방촌 체험관’을 지으려 한 것이다. “어린이 날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이 자녀들에게 ‘너희도 공부 못하면 이렇게 살게 된다.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라’고 말하며 돌아다녔다. 그런 소리를 들은 마을 노인들이나 아이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생각하면 참담하다”. 그 계획은 빗발치는 반대 여론에 밀려 철회됐지만, 당시 작가가 남긴 언론 인터뷰 발언은 지금도 여전히 불편하다.

‘기생충’ 관광지 역시 ‘괭이부리말’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선례는 수두룩하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의 빈민가 ‘파벨라’가 대표적이다. 이곳의 빈민가 투어는 관광 상품화된 지 오래다. 인도의 뭄바이, 남아공의 스웨토, 케냐의 키베라,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등도 같은 부류다. 그 공통점은 가난(poor)을 관광상품화(tourism)하는 ‘푸어리즘(poorism)’이다. 지난해 방문객 300만 명을 돌파한 부산 감천문화마을도 푸어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의 산토리니’나 ‘한국의 마추픽추’ 등 해외 관광명소에서 따온 별칭으로 미화한다 해도, 한국전쟁 피란민촌이라는 정체성은 바뀌지 않는다. 감천문화마을의 가치는 그 정체성을 갈고 닦는 데서 빛난다.

따라서 명심해야 할 게 있다. 관광사업은 곁가지일 뿐, 본질은 어디까지나 마을 공동체 보존에 있다는 사실이다. 관광사업 또한 원주민이 마을에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혹여 관광사업에 눈이 멀어 그 본질을 외면한다면, 마을도 잃고 주민도 잃는 비극이 초래될 게 뻔하다. 비극으로 침몰하는 함정은 정체성을 흔드는 사업 욕심이 발동하는 곳에 도사리고 있다.

‘기생충’이란 제목은 역설적이다. 영화에서 보듯, 빈자는 부자에 기생하지 않는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부자와 상생을 모색할 따름이다. ‘기생충’이라 명명한 건 빈부 격차를 키우는 분배 불평등에 대한 항변적 성격이 짙다. 그래서 기생충도, 감천문화마을도 상생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도둑맞은 가난’의 낭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마산만 주변 해양쓰레기 174t수거한다
  2. 2난치병 환우에 새 생명을 <221> 파킨슨병 앓는 정성훈 씨
  3. 3[아침숲길] 내가 모르는 나의 장점을 찾는 시간 /박희숙
  4. 4샌더스 결국 하차…미국 대선 트럼프-바이든 양자대결로
  5. 5[강동진 칼럼] 진정으로 변해가는 모두의 시간 되길
  6. 6[도청도설] 막말 고질병
  7. 7축제 취소된 대게 할인 판매
  8. 8원양선원 귀국길 막막…전국원양산업노조 해결책 마련 분주
  9. 9부산시산림조합, 코로나성금 1000만 원 전달
  10. 10롯데 청백전 TV 생중계
  1. 1홍남기 “가족돌봄비용 1인당 50만원으로 2배 확대”
  2. 2연제구, 구민에게 재난기본소득 지급…부산 9번째
  3. 3통합당, 김대호 최고위 만장일치 제명…차명진은 윤리위 회부
  4. 4오세훈 후보 유세 차량에 흉기 든 괴한 달려와…현장 경찰에 제압
  5. 5정의당 창원진해 조광호 후보 사퇴…“황기철 후보에게 힘 싣겠다”
  6. 6내일부터 이틀간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사전투표 실시
  7. 738노스 “북한 최근 미사일 발사 시험 가능성”
  8. 8문 대통령 "우리 치료제와 백신으로 인류의 생명 구할 수 있기를"
  9. 9부산시 제21대 총선 선거인 수 총 295만 8290명…제20대 보다 5329명 늘어
  10. 10김종인 “모든 대학생에게 재난장학금 100만원 지급해야”
  1. 1마산만 주변 해양쓰레기 174t수거한다
  2. 2원양선원 귀국길 막막…전국원양산업노조 해결책 마련 분주
  3. 3글로벌선사 결항에 부산항 물동량 위기
  4. 4바닷속 방치된 굴패각 재활용…친환경 해양생태블록 만든다
  5. 5 기아 텔루라이드, 세계 올해의 車
  6. 6 부산은행 ‘가을야구 정기예금’
  7. 7 부산관광공사 랜선여행 이벤트
  8. 8‘코로나 폭락’에 상장사 358곳 자사주 매입
  9. 9금융·증시 동향
  10. 10가족돌봄비용 1인당 50만원으로 확대, 유통업체 교통유발부담금 30% 경감
  1. 1온라인 개학 첫날 부산 쌍방향 수업 40%에 달해
  2. 2낙동강 횡단 엄궁대교 입찰 재추진
  3. 3코로나19 완치 판정 받은 80대, 퇴원 후 사망
  4. 4부산 해외입국자 1명 코로나19 추가 확진 “완치자 재증상 없다”
  5. 5오늘 중3·고3부터 온라인 개학…이달 내 초중고 모두 원격수업시작
  6. 6대전 지하철 역무원, 코로나19 완치 판정 후 재확진
  7. 7‘음주 바꿔치기’ 래퍼 노엘, 첫 재판…장제원 “아버지로서 마음 아프다”
  8. 8사하구 하단동 하수도 공사현장에서 노동자 가스중독…소방 “추가 구조 작업 진행 중”
  9. 9여자화장실 불법촬영한 지하철 역무원, 휴대전화 속 음란물 다수 확인
  10. 10하수도 공사 중 유독가스로 3명 숨져…동료 찾으러간 작업자도
  1. 1롯데 청백전 TV 생중계
  2. 2‘전설’ 루 게릭 배트, 12억 원에 팔렸다
  3. 3유럽축구 재개 움직임…분데스리가 내달 ‘무관중’ 준비
  4. 4손흥민도 200억 뚝…축구선수 몸값 12조원 증발
  5. 5호나우지뉴 19억 보석금 내고 석방
  6. 6만수르 제친 최고 부자 구단주는?
  7. 7주말 개막하는 대만 야구…관중석엔 마네킹 응원단
  8. 8IOC “도쿄올림픽 예선 내년 6월 29일까지 마무리”
  9. 9허리 세운 거인, 올 시즌 필승조 ‘이상무’
  10. 10성장통 겪은 한동희 “거인 핫코너 올해는 내가 주인”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독일 통일과정 7대 과오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다시 읽어보는 한 ‘분단인’의 삶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진정으로 변해가는 모두의 시간 되길
그럼에도 봄은 오고 있다
기고 [전체보기]
‘지역별고용조사’에 협조를 부탁드리며 /마경필
코로나19를 넘어 성장하자, 우리 공동체! /배정이
기자수첩 [전체보기]
대학 온라인 강의 미봉책 멈추길 /최지수
억측과 갈등만 낳는 낙동강청 /임동우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히포크라테스의 거울
개혁을 위한 아카데미상은 없지만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단절은 또 다른 생성을 낳는다
귀하디귀한 악기 ‘편경’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부산시 곳간이 더 걱정되는 이유 /이석주
인내의 시간, 염치를 갖자 /송진영
도청도설 [전체보기]
막말 고질병
3무 선거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여든 살 어머니의 만학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도다리쑥국
아시정구지의 추억
사설 [전체보기]
첫날 곳곳 혼선 온라인 수업 서둘러 보완하길
행락 인파·부활절 예배 등 이번 주말 협조 중요하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국민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면
인구 절벽 시대, 복지 대타협 급하다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허황된 중국경사론
“한미동맹, 이상없다”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전쟁의 얼굴
호의가 낳은 명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의 도전과 한국인의 응전
한국 경제 회복탄력성이 관건이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장기전 불가피한 코로나
코로나가 지구촌에 던진 경고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사계’ 연주의 전설, 이 무지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어느 멋진 날의 와인을 기대하며
와인의 르네상스
특별기고 [전체보기]
‘도시국가’시대 市長의 역할 /정해문
‘코로나 19’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곽붕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소치 허련이 그린 도깨비 그림
우봉 조희룡의 매화서옥도
  • 낙동강수필공모전
  • 2020하프마라톤대회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