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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예술’이라는 언어 /강필희

봉준호의 아카데미 작품상, 구로사와도 못 이뤘던 성취

영어냐 한국어냐 문제 안돼, 이우환 BTS는 이미 세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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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가 타계한 게 22년 전이다. 당시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은 그의 부음을 1면 톱 기사로 전했다. 장인에 대한 예우가 일상화된 나라이긴 하지만 한 예술인의 죽음을 이렇게까지 애도한 건 일본에서도 드물다. 영화사에서 구로사와 감독의 위치는 일본에 한하지 않는다. 그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에선 외국어영화상과 평생공로상까지 받았다. 공로상 시상식장에서 트로피를 전달한 사람이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다. 둘 다 자신의 영화로 그를 오마주했던 ‘구로사와 키즈’들이다. 마틴 스콜세지, 페데리코 펠리니 등 수많은 명감독이 스승이라 부르기 주저않았던 구로사와 감독도 받지 못한 상이 있다.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과 감독상이다.

봉준호 감독이 작품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까지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한 데 사람들은 여러 의미를 부여한다. 그중 으뜸은 영어가 아닌 언어로 영화를 만들어 작품상까지 받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한국어로 된 영화가 세계 영화의 심장부를 점령한 건 분명 사건이다. 기적이란 말도 과장이 아니다. 자막을 보면서 영화에 몰입하기란 영어권 영화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굳이 외국어 영화가 아니어도 양질의 자국 언어 영화가 넘치는데 아카데미가 비영어 영화, 그것도 한국어 영화를 넘버원에 올렸다. 인류 보편의 언어 즉 콘텐츠의 힘일 것이다. 그 덕분에 ‘1인치 자막의 장벽’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그 틈으로 한국과 한국어가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취재하면서 만난 네덜란드 영화비평가에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나 ‘하하하’ 같은 영화가 국내 흥행엔 실패하지만 영화인이나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을 때다. 특히 칸이나 로테르담 같은 외국 유명 영화제가 주목하고 상도 줬다. “뚜렷한 스토리도, 장치도 없이 밋밋해보이는 그의 영화가 무엇이 그리 특별한가”하는 질문에 그는 누구보다 쉽고 명쾌한 답을 들려줬다. “일상이 영화가 되는 영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하는 영화, 그런 영화가 유럽엔 없거든요.” 대화를 나누던 중 마침 이창동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통화였는데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는 전화를 끊고 말했다. “우린 서로 영어가 잘 안 통하지만 희한하게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요. 그게 나도 참 신기해요.”

쓰레기처럼 버려진 일본 나오시마섬을 예술촌으로 가꾼 이가 베네세 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다. 그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이우환 전시를 보고 미술관 건립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인 이우환의 미술관이 일본에 먼저 생겼다. 부산시립미술관에 이우환 공간이 들어서기 5년 전 일이다. 올해는 프랑스 아를에 이우환 미술관이 문을 연다. 이우환은 현대미술의 중심인 미국 구겐하임에서,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도 전시를 가졌다. 그가 주변 산에서 구한 돌과 대장간에서 제작한 철판이 뉴욕과 파리에서 ‘미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부산 공간화랑의 신옥진 사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개념 미술에 가까운 이우환의 작품을 수많은 사람이 평론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한 프랑스 평론가의 글이었다고 했다. “프랑스인이 한국 작품을 그렇게까지 심도있게 이해했을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 내가 한 수 배웠다. 예술 자체가 세계어다.”

음악에서의 한류는 이미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고전이 되었다. 방탄소년단(BTS)의 성취는 더 눈부시다. 봉 감독 말대로 이들의 영향력은 영화 한 편의 수천 배다. BTS 노래도 가사가 대부분 한글이다. 전 세계 팬클럽 아미(Army)들은 한국말로 떼창한다. BTS는 그저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팬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무기로 영역을 확장해 세계 음악계를 하나하나 접수해가고 있다. 그 핵심엔 ‘땀’ ‘꿈’ ‘청춘’ ‘나 자신’ 같은 공감의 메시지가 있다.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소프트파워는 어느새 이렇게 커지고 강해졌다.

아카데미는 그동안 유색인종과 여성에 유독 차별적인 행태를 보여 논란이 됐다. 4년 전엔 주요 부문 후보가 모두 백인인 데 항의해 배우들이 시상식을 보이콧했다. 그러나 올해 아카데미는 지독히 ‘로컬(Local)’적인 한국 영화에 보란듯이 문을 활짝 열었다. 그들은 이제 봉 감독의 유머러스한 수상소감을 들으며 우리와 함께 웃는다. 최소한 그 세계에선 영어냐 한국어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그냥 예술이란 만국공통의 언어가 있을 뿐이었다.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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