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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와인 바이러스와 기생충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2-12 19:21:07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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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주로 생물의 질병을 일으키는 전염성 병원체의 일종이다. 세균은 무생물이나 대기 등에 존재하면서 생물과 무생물 모두에서 번식하지만 바이러스는 일정한 타액, 접촉 등에 의해 생물 간에서만 번식한다. 세계를 공포로 떨게 하고 있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도 사람이 숙주인 셈이다. 스스로 복제해 악의적 목적을 수행하는 악성 소프트웨어를 ‘컴퓨터 세균’이 아닌 ‘컴퓨터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것도 컴퓨터 사이에서만 전염되기 때문이다.
보트리티리의 영향을 받아 수분이 마르고 당분과 향이 농축된 포도알.
포도 재배 시 생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박테리아성 질병은 장기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와인 바이러스는 전염성과 내성이 강하며, 감염되면 포도나무를 모두 뽑아버리거나 토양을 정화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다.

포도껍질에 있는 폴리페놀 성분은 항암 및 항산화 작용과 혈청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와인 양조 과정에 생기는 아황산가스는 인체에 해가 안 될 정도로 소량이지만,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보다 더 작은 바이러스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와인은 감염 초기에 인체 세포 내 바이러스 DNA 합성을 막아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고, 다른 세포로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오늘 저녁 와인 한 잔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두려움을 이겨보자.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을 그린 영화 ‘기생충’이 연일 화제다. 다른 동물의 몸에 기생해 영양분을 빼앗아 생활하는 기생충처럼 포도 재배에 악영향을 미치는 병충해와 질병이 있다. 나방 애벌레는 봄철에 싹을 해치고 포도를 망치며, 진드기는 포도잎에 서식지를 만들어 식물 성장을 방해한다. ‘가루곰팡이균’이나 ‘노균병’ 같은 ‘밀듀 곰팡이’는 포도나무의 모든 녹색 부분에 발생해 잎을 떨어뜨리고 광합성 작용을 못 하게 해 포도에 당분이 생기지 않게 한다. 곰팡이성 질병인 ‘보트리티스 씨네이라’는 습기·물기가 많은 곳에 주로 생긴다. 덜 자란 포도껍질을 썩게 하고 와인 향과 색이 옅어지게 만들어 수확량과 품질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하지만 습한 아침과 건조한 오후라는 최적 환경에 접하면 곰팡이와 와인의 공생으로 훌륭한 스위트와인이 만들어진다. 보트리티스의 미세한 필라멘트가 포도껍질을 뚫고 포도 알맹이의 물을 빨아들여 당도는 높고 독특한 향이 가미된 건포도가 되기 때문이다. 보트리티스를 귀한 곰팡이 ‘로블 롯’이라 부르는 이유다.

와인처럼 인간도 공생을 바란다. 하지만 공생이 어려워진 각박한 시대를 산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함께 잘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계급을 벗어나려는 욕망과 계급을 지키려는 욕망이 부딪히는 현실. 변화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는 똑같은 강물에 손을 씻을 수 없다”고 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상생을 위한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은 질문하고 답하는 것.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려면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같이 잘 살면 안 될까요? 진정 누가 기생충인가?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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