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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계획과 무계획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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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인상은 ‘수직’적이다. 네 식구 모두 백수인 기택(송강호) 가족의 저지대 반지하 셋집과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 사장(이선균) 가족이 사는 언덕 위 고급주택 사이에는 수많은 계단이 있다. 화면 중앙을 세로로 가르듯 펼쳐내는 까마득한 높이의 그 계단은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건재할 것 같은 빈부 격차를 상징한다. 신분제나 다름없는 그 수직적 사회질서는 반지하 가족에게 계획적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루 하루 살아가기 급급할 뿐이다. “아버지, 저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돈을 벌어 박 사장의 집을 사겠습니다.” 기택은 아들의 말에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답한다. 계획을 세워봤자 이룰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봉준호 감독이 칸영화제에 ‘기생충’을 출품했던 지난해 5월, 한국의 현실이 그랬다. 당시 상위 20%(5분위)의 소득은 하위 20%(1분위)의 5.30배로 1년 전(5.23배)보다 0.07배포인트 상승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3년 이래 가장 큰 격차였다. ‘기생충’이 칸영화제를 비롯한 50여 국제영화제를 휩쓴 데 이어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여겼던 오스카 작품상까지 정복한 건 이런 현실을 충실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빈부 격차의 심화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기생충’에 대해 “빈부 격차 담론에 굶주린 젊은 관객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한 건 그래서다.

봉 감독은 ‘영화계의 레지스탕스’라 할 만하다. 평등과 자유를 희구하는 수평적 영상언어로 보편적 공감을 끌어냄으로써 무계획적 삶을 강요하는 수직사회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는 의미에서다. 봉 감독은 오스카상 수상 후 “계획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그 계획을 “이미 모두가 연결돼 있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서 펼친다. 이 메시지는 수직사회에서 신음하는 세계인들에게 무계획적 삶을 계획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봉준호 장르’의 힘이다. 그 힘은 치열한 문제의식과 저항의지에서 솟아난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반항은 만인에 근거하여 최초의 가치를 정립시키는 공통의 토대”라며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을 빌려 이같이 선언했다. 봉 감독에게서 레지스탕스 카뮈의 행동하는 양심을 본다. 계획과 무계획 사이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활력이다. 그런 봉 감독의 저항의지가 세계를 바꿔가고 있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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