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기고] 내가 사랑한다는데, 뭐 어때서 /박정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2-10 19:58:20
  •  |  본지 25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사랑 앞에 놓인 결핍은 불평의 대상이 아닌 극복해야 하는 무엇이다. 사랑은 때때로 뜻밖의 장소에서 다가온다. 조금의 덜컹거림과 조금의 소음. 끊임없이 사람이 오가는, 조금은 산만한 몇 평 남짓 공간. 가방에서 책 한 권을 조심스레 꺼낸다. 단어들이 부딪히며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 휘황찬란한 언어의 속삭임에 마음이 제멋대로 휘둘린다. 기쁨과 슬픔, 공감과 분노 사이 어느 지점에서 헤맨다. 견고하던 개인의 세계 속에 타인의 삶과 생각이 침투한다.

지하철에서 책을 펼치기 위해선 몇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충분한 공간. 좌석에 앉을 수 있다면 가장 좋다. 서 있는 경우, 들고나는 이들을 방해하지 않는 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 나는 지하철에서도 책 읽는 사람이라는, 한 줌의 허세가 가미되면 딱 좋다. 책을 펼치는 순간, 이질적인 풍경도 함께 펼쳐진다. 마땅히 스마트폰을 쥐고 있어야 할 손에 감히 책이라니. 이질감을 자아내는 원인은 나 자신이고, 손에 쥔 책 한 권이다.

왜 주변에 책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까 늘 불평불만 가득하던 대학 시절을 넘어, 책 만드는 일로 어찌어찌 입에 풀칠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다만 개인의 상황이 바뀌었을 뿐, 현실은 더 열악해졌다. 독서인구는 급격히 줄다 2019년에는 기어코 절반을 찍고 말았다. 두 명 중 한 명은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암울한 통계는, 그럼 책 읽는 나머지 절반은 대체 어디 있느냐는 절망으로 이어진다. 정말 두 명 중 한 명만 읽어도, 출판계가 이렇게 어렵지 않을 것만 같다.

출판계가 늘 불황이고 독서인구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는 시대이다. 문을 닫는다는 출판사와 서점, 인쇄소 소식이 연이어 들려온다. 누군가는 종이책의 종말을 예언한다. 내 직업에 대한 확신과 자긍심을, 어쩌면 정체성까지 뿌리째 흔드는 말들이다. 책보다 재미있는 게 충분히 많은데, 굳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나 역시 모르겠다. 책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이런데, 사람들이 책에 관심 가져주길 바라는 건 모순이다. 하필 이런 시대에 편집자라니.

이따금 새로운 사람을 만나 명함을 내밀 때면, 부산에서도 출판사가 있었느냐는 질문이 늘 따라온다. 존재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은데, 지역출판이 더욱 열악한 환경에 놓였다는 투정은 사치에 가깝다. 이러한 지표들은 이제 갓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청년의 순수한 열정을 걱정과 불안으로 물들인다. 여러모로 힘든 세대이지만, 출판사 편집자라는 직함은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든다. 혹여 깊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난파선에 멋도 모르고 몸을 실은 건 아닐까, 어떻게든 다시 책의 시대가 돌아올 거라며 허황된 믿음을 좇는 건 아닐까. 온갖 의문이 하루에도 수십 번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온다. 출판, 지역, 청년. 이 세 단어가 만들어내는 조합은 아무래도 암울하다. 스마트폰으로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홀로 책을 쥔 채 머뭇머뭇하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처럼.

이런 복잡한 감정도 잠시, 책을 펼치자 활자 속으로 빠져든다. 우연한 마주침으로 시작된 인연은 한 청년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느릿느릿 가던 시간에 속도가 붙는다. 시간의 소용돌이에 몸을 맡긴다. 세상의 시간과 개인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현실은 망각된다. 사랑의 증상이다. 이것저것 따지기보다 타오르는 감정에 몸을 맡긴다. 논리와 이성이 사라진다. 텅 빈 머릿속에 감성이 스민다. 사랑은 불안의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세상이 반대하더라도, 이 모든 게 극복 대상이다.

사랑이 향하는 곳은 꼭 사람일 필요는 없으며, 누군가에겐 책이 그 대상이다. 스마트폰으로 대동단결된 이 평화로운 공간 속, 내 손에 쥐어진 종이 뭉치가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가 지하철에서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누가 뭐래도 나는 책을 펼칠 것이고, 다른 누군가가 지하철에서 펼칠 책을 만들 것이다. 거창한 사명감은 없다. 그저 한 존재를 위한 사랑이다. 내가 사랑하는 걸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불안과 결핍을 재료 삼아, 한 존재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보겠다는 의지다. 사랑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늘 사랑에 빠지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존재 아닌가. 무엇보다 내가 사랑한다는데, 뭐 어때서.

호밀밭 출판사 편집자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집콕으로 뻐근한 허리엔 스트레칭…마스크 트러블엔 충분한 보습
  2. 2통합당 공천 탈락 정승재 무소속 출마 선언
  3. 3 큰 인물론(김두관) vs 토박이론(나동연)…양산을 누구 인물론이 통할까
  4. 4부산공동어시장 공영화 추진 또 ‘멈칫’
  5. 5[서상균 그림창] 선심?
  6. 6코로나19 ‘뉴노멀’ 시대 <1> 일터의 변신
  7. 7산청함양거창합천 강석진·김태호, 인터뷰 무산놓고 정면 충돌
  8. 8 기장 최택용, 정부에 마스크 자택 무상배달 제안
  9. 9연제구새마을지회, 연제문화원에서 수제 면 마스크 제작
  10. 10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3월→6월→연말 추가연기
  1. 1문재인 대통령 “소득 하위 70%, 4인가구 기준 100만 원 긴급재난지원금”
  2. 2 문재인 대통령 “ 긴급재난지원금, 소득하위 70%·4인 가구 100만 원”
  3. 3文 대통령 “4인 이상 가구 100만 원 … 고통과 노력 보상받을 자격 있어”(종합)
  4. 4북한 ‘초대형 방사포’ 발사하자, 미 해군 정찰기 남한 비행해
  5. 5더불어민주당 “추경 편성에 박차 가해야”
  6. 6‘인당 1억 지원, UN본부 판문점 이전’ 등 공약에 대해 물었습니다
  7. 7부산 북구, 관내 청소년에게 ‘한가득 희망박스’ 지원
  8. 8김해시 “해외 유입자 역감염 방어에 행정력 총동원”
  9. 9안철수 “여야 비례위장정당 심판해달라…균형자 역할 정당 필요”
  10. 10 권영진 대구 시장 피로누적으로 자택요양중
  1. 1부산공동어시장 공영화 추진 또 ‘멈칫’
  2. 2해양대 ‘해양 인공지능 융합전공’ 개설
  3. 3부산~후쿠오카 퀸비틀 취항 9월 이후로 연기
  4. 4금융·증시 동향
  5. 5주가지수- 2020년 3월 30일
  6. 6해수부, 안전한 조업활동 지킴이 ‘어선안전정책과’ 출범
  7. 7KIOST, 주름개선 바이오메디컬 소재 개발
  8. 8
  9. 9
  10. 10
  1. 1당정청 소득하위 70% 가구에 100만원...文대통령 결정만 남았다
  2. 2교육부, ‘초중고 온라인 개학 ·고 3만 등교 · 개학 연기’ 등 다각도 검토 …내일 발표
  3. 3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아이돌봄쿠폰 등과 중복수급 가능 ”
  4. 4부산시, 113·114번 확진자 동선 공개…두 환자 모두 해외입국자
  5. 5 대구시 긴급생계지원사업 오늘 공고 … 4인 가구 80만 원
  6. 6해운대구, 재난기본소득 1인당 5만 원 긴급 지원
  7. 7오늘(30일) 부산 날씨 맑음, 모레 비 소식
  8. 8거창군 코로나19 종합 대책 전 군민·소상공인 재난지원금 지급
  9. 9부산서구, 재난기본소득지원금 전 구민 5만원 지급
  10. 10부산 시청 민원실에 신나통 들고 찾아온 남성, 경찰과 대치 끝에 검거
  1. 16월로 연기된 부산 세계탁구대회 개막 또 연기
  2. 2 옛법택견 이제 링 위에서 증명한다
  3. 3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3월→6월→연말 추가연기
  4. 4“다저스, ML 시즌 취소 시 가장 큰 타격”
  5. 52군에 혼쭐난 거인 선발…따끔한 예방주사
  6. 6K리그 ‘일정 축소’는 합의, 개막시점은 미정
  7. 7코비 고별경기 수건, 경매서 4000만 원 낙찰
  8. 8
  9. 9
  10. 10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독일 통일과정 7대 과오
한국전쟁 70년…분단인 통일인
다시 읽어보는 한 ‘분단인’의 삶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그럼에도 봄은 오고 있다
제1부두, 이왕 보존하는 김에 제대로
기고 [전체보기]
‘코로나19와 공존’하는 일상을 찾기 위해 /손현진
국제관광도시로 가는 부산 킬러콘텐츠 /장순복
기자수첩 [전체보기]
억측과 갈등만 낳는 낙동강청 /임동우
양산 도로 침하 사고의 교훈 /김성룡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히포크라테스의 거울
개혁을 위한 아카데미상은 없지만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귀하디귀한 악기 ‘편경’
강강술래와 농악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부산시의 뒷북 /하송이
자화자찬이 아니라 묵묵하게 /정옥재
도청도설 [전체보기]
리턴 매치
동학개미운동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여든 살 어머니의 만학
상월선원의 천막결사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아시정구지의 추억
깻잎무침 두 장 컵라면 하나
사설 [전체보기]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침체된 소비 진작 마중물 되길
해외입국자 2주 격리, 보다 세밀한 관리 필요하다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국민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면
인구 절벽 시대, 복지 대타협 급하다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허황된 중국경사론
“한미동맹, 이상없다”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전쟁의 얼굴
호의가 낳은 명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의 도전과 한국인의 응전
한국 경제 회복탄력성이 관건이다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가 지구촌에 던진 경고
코로나 최전선 지방정부엔 여야가 없다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사계’ 연주의 전설, 이 무지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의 르네상스
영화 ‘사이드웨이’가 말하는 것
특별기고 [전체보기]
‘도시국가’시대 市長의 역할 /정해문
‘코로나 19’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곽붕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우봉 조희룡의 매화서옥도
심사정 지두화 ‘절로도해도’
  • 낙동강수필공모전
  • 2020하프마라톤대회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