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과 첨단, 신구(新舊)가 공존하는 도시형 농어촌인 기장은 부산광역시의 유일한 ‘1개 군(郡)과 읍·면·리’의 행정구역 단위로 부산 면적 약 1/3에 해당한다. 1995년 농촌을 개발하기 위해 균형개발 정책의 일환으로 도농(都農)통합시를 도입하면서 기장군이 부산시에 편입됐다.
기장에는 선사시대 고분군이 기장읍 청강리에 70여 기, 장안읍 좌천리에 100기, 철마 고촌리에 100기가 존재하는데 정확한 규명은 어려우나 고분 양식은 동래 복천동 고분군과 비슷하고, 삼한시대를 거쳐 신라 시대까지 일정한 정치적 기반을 가진 세력이 존재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울주 동래 양산에 속했고, 구한말에는 동래부 기장군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동래군에 속했다. 1973년 동래군이 폐지되면서 김해와 함께 양산군에 병합되기도 하면서 복군이 되기까지 ‘기장’이란 지명은 끝까지 남았던 오래된 이름이다.
한 도시가 발전하는 데 역사적 문화유산은 자존적 가치를 지니며 그 도시의 정신적 골격이 된다. 문화란 생활의 질과 격을 높이면서 끊임없이 진보하고 향상하려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과 그에 따른 물질적 성과를 이르는 말이다. 오래도록 이어져 온 것이 문화가 되고 시간이 쌓여 역사가 된다. 최근 기장읍성 복원이 이뤄지고 향교와 장군청 등 문화재도 어우러진다. 아무리 낡은 것이라도 오래된 것은 어디 한 군데 미운 구석이 없다.
한 가정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풍이 있고, 그 지역에는 뿌리 깊은 지역문화가 있다. 어떤 형식으로건 공통적 특징을 가진 문화권 안에서 기존 것과 새로운 문화는 조화롭게 공존해왔다. 그 고장만의 포용적 배려 속에서 서로 낯설지 않게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루고 살아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어쩌면 대대로 살아온 마을 터전을 통째 내어주면서까지 신문물을 받아들인 기장 토착민의 인성과 인심이 좋아서일지도 모른다. 원자력발전소에 마을을 내어준 고리부터 시작된 기장군의 실향민은 신도시 건설과 관광단지로 해서 이제는 누구네 집, 누구네 전답, 공동우물이 어디쯤 있었는지 골목의 기억까지 사라졌다.
요즘 기장에는 인문적 도시를 지향하는 양질의 강좌와 군민 건강 증진을 위한 체육시설, 복지관, 박물관, 도서관, 청소년수련원, 어린이 극장, 공원 등이 많다. 여기다 머지않아 정관선 전철이 놓이게 되면 교통 편의까지 원활해져 더없이 쾌적한 환경의 도시가 될 것이다.
게다가 동해안 천혜 절경을 배경으로 한 동부산 관광벨트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주말이면 도로가 주차장이 될 지경이다. 전통 농어촌이면서도 두 개의 신도시를 품고 있다 보니, 기장은 심장이 쿵쾅거리도록 하루가 다르게 변모 중이다. 자연마을과 신도시의 상반된 문화권이 균형을 이루고 공존하는 도시형 농어촌의 일상적 문화가 이상하리만치 평화롭고 자연스럽다.
그 지역 삶의 수준은 그 지역문화가 대변한다. 오래된 고장 기장은 가사 문학의 보고이자 산실이다. 고산 윤선도와 ‘관동별곡 지호 이선집’ ‘장전구곡가’ 그리고 무엇보다 기장 마을 곳곳을 노래한 옛 가사 ‘차성가’는 소중한 예술 유산이다.
기장은 지역민과 방문객이 함께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해 축제의 고장이라 할 만큼 축제가 많다. 지역을 홍보하고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축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인물을 중심으로 한 문화재나 그 지역의 역사·문화유적을 살리는 축제도 중요하다. 그 고장 인문·문화 자산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지역을 대변하는 문화행사로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은 문화예술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술인이 노력하고 지역민이 참여하는 가운데 지역사회의 관심과 도움도 필요하다.
기장은 동해안 절경을 비롯해 자연환경이 참으로 뛰어나다. 동시에 역사·문화 유산도 많다. 민족의 소중한 자산인 기장의 가사문학을 보존하면서 문화관광 콘텐츠로 활용하는 일 등은 의지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다. 보석 같은 고장 기장의 역사·문화·예술·인문 콘텐츠를 가꾸기 위한 더 많은 상상력과 공론화와 참여를 바란다.
시인·전 기장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