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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유권자 역습의 시간 /강춘진

내 편만 옳다는 세력 싸움, 위선·가식의 언행도 용인…지역감정 다툼보다 섬찟

4월 선거엔 권력이 길들인 묻지 마 지지층 깨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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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유권자의 시간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70여 일 남았으니, 그 시간은 길지 않다. 오랜 경험이 말해주듯 선거가 끝난 뒤 주권을 모아준 유권자들은 선거에 나섰던 사람들로부터 “언제 봤냐”는 식으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또 볼 것인데도, 선거 때마다 그 씁쓸한 뒤끝은 되풀이됐다. 다음 선거가 올 때까지 4년 가까운 세월은 오롯이 권력자의 시간이었다. 그들의 시간은 훨씬 긴 셈이다. 그러니 다시 찾아온 유권자의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잠시나마 ‘권력 추종 세력’의 저자세를 즐기는 재미도 있다. 이번 시간에는 유권자의 역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짜릿하겠다.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말 게임 룰을 정하는 여야 각당은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서로 유리한 구도를 꾸리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집권당은 선거법 개정을 위해 군소 정당을 모아 ‘4+1’ 협의체라는 임시 모임을 만들었고, 제1 야당은 총력 저지에 나섰다. 임시국회 쪼개기라는 기상천외한 기법까지 동원돼 임시 모임 진영 간에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진 룰이 정해졌다. 여기서 연동형이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몇 석의 배분 등 정치공학적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법 내용을 따지고 싶지 않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정당이 등장해 유권자 혼란을 부추길 것이라는 진단도 나오는 판국이다. 1월 말 현재 4·15총선 예비 후보자로 벌써 1800명 넘게 등록했다니 선거전은 뜨겁게 달아오르는 모양이다.

연유야 어찌 됐던 주요 정당들은 바뀐 룰에 맞춰 선거전략을 짤 게 뻔하다. 남다른 이미지의 인재 영입에 나서고, 표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후보자라면 당을 위해 생고생을 했더라도 과감히 내친다. 이미지 쇼에는 헛발질이 난무하고 있다. 보란 듯이 새 피 수혈 이벤트를 펼쳤다가 뒤늦게 흠이 드러나면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리친다. 해당 지역에서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인물에 대한 영입 시도를 사태가 심각해진 뒤 없었던 일로 치부한다. ‘아빠 찬스’를 쓴 후보자를 온갖 논리로 옹호하다 역풍이 불자 그 후보자를 그냥 주저앉힌다. 그때마다 ‘국민을 위해서’라나. 선거 룰이 어떻게 변하든, 여야 각 당의 전략이 어떤 형식이든 선거판 전쟁에 유권자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실체적 경험이다.

유권자의 본때를 화끈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선출직 권력 획득의 바탕이 되는 표를 얻기 위해 국민, 국민, 국민을 내세우는 그들의 공허한 외침을 진정한 국민의 목소리로 걷어내고 싶다는 게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사실 지금 정치권에서 수없이 들려오는 ‘국민적 지지’는 어쩌면 진영 간 제 입맛에 맞게 길들인 ‘우리 편 국민의 소리’에 불과하다. ‘우리’만 옳다는 양대 세력이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판을 치는 진영 간의 ‘묻지 마 지지’ 다툼은 1980년대 민주화 이후 한때 지역감정이 깔린 ‘무조건 내 지역 지지’보다 더 섬뜩하다.

대가리가 깨지면 죽거나, 살아나더라도 치명적인 후유증이 따를 수 있는데도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란다. 이들은 정부 정책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하고, 한 치의 의심이나 다른 의견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철 지난 친미반북(親美反北)과 현 정권 타도만 외치는 ‘태극기 부대’나 대안 없이 구태의연한 목소리만 질러대는 야권에서는 여전히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위선과 가식의 언행이 만천하에 드러난 사람도 ‘우리 편’에서는 보호받는 세상이다. ‘웃고 있지만 슬픈’ 이 현실을 놓고 어찌 된 판인지 그동안 주요 국면마다 닦달하듯 나섰던 시민단체들의 ‘지적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당연히 합리적인 세력은 일단 침묵하고 만다. 총선을 앞둔 정치 시즌이지만, 가족이나 친한 사람 간 정치 이야기는 실종됐다.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정책이나 올바른 국가 설계보다는 절대적인 지지에 기대는 정치 세력이 힘을 더 얻는 현실이 짜증난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지지하는 권력이라도 잘못된 것에는 엄중한 경종의 메시지를 날리고, 상대 편이라도 잘한 것에는 박수를 보내는 정치문화가 사라진 나라에서 사는 게 슬픈 탓이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기댄 정치 구도가 퇴색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묻지 마 진영 논리’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적대적 대립 구도를 구축했다. 따지고 보면 정치권력이 만든 프레임에 말려든 게 아닌가. 무조건 지지층은 길들여진 셈이다.

다시 유권자의 시간이다. 짧지만, 세상을 바꿀 힘이 또 주어졌다. 미래 세대를 위한 긍정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우선은 총선의 투표 향배가 지지 세력만 바라보는 정치 구도를 깨는 쪽으로 쏠렸으면 좋겠다. 눈먼 지지를 바탕으로 연명하는 정치권력에 끌려다닌 ‘유권자들’을 미몽에서 깨어나게 하는 결과를 기다린다.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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