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동거 커플’이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20년 전의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수도 파리에 거주하는 세대 중 절반이 동거 커플로 파악됐다. 그러니 당시 태어나는 아기의 40%가 혼외 자녀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는 1980년의 11%보다 4배나 늘어난 수치였다. 요즘도 혼외 출산아가 프랑스 신생아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흔하다. 결혼이란 굴레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젊은 층의 가치관이 반영된 셈이다.
미국의 결혼율도 지속적인 하향세다. 1960년 87%로 최고조에 달했으나, 1999년에는 49%를 기록해 50%선이 무너졌다. 혼자 사는 이들이 그만큼 늘어난 영향이다. 5년 전에는 미국인 1000명당 결혼 건수가 6.74건으로, 최근 100여 년 사이 최저치를 나타냈다는 사실이 회자됐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독신 남녀가 남들 앞에서 번듯이 행세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혼해 가정을 이룸으로써 어른이 되고 책임질줄 아는 사회인으로 대접을 받아서다. 나이가 들면 으레 결혼으로 가정을 꾸리는 게 당연하고, 독신은 비정상적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어제 국내 어느 결혼정보업체의 조사 결과가 새삼 눈길을 끈다. 전국 19~44세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건데, ‘결혼은 사정에 따라 안 해도 된다’는 응답이 10명 중 8명꼴로 나왔다. 20년 전의 통계청 자료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때 20대 여성 중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응답이 전체 42%였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란 풍조가 퍼졌다고 해도,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심한 우리나라로서는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사실 출산율이 높은 스웨덴·프랑스 같은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혼외 출산 비율이다. 한국은 1.9%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따라서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혼외 출산을 차별 혹은 멸시하거나 미혼모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일탈자로 낙인찍어서야 저출산을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가족 개념도 새로워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근래 학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미혼 커플이나 1인가구, 공유 하우스 기거 등을 가족해체만이 아닌 가족확장으로 넓게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결혼기피 현상 속에 가부장적 질서의 전통적인 가족은 점점 허물어지는 듯하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