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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학지 ‘허와 실’에서 살아남기 /배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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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1-23 18:58:33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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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庚子年)이다. 시간의 추가 워낙 빠르다 보니 한 해 한 해가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느낌이다. 무너져간다는 느낌은 보통 40대 이후 중·장년에게 어울리는 단어일 게다. 누군가는 ‘잘 익어가는 것’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여간 익어가거나 무너져가거나 시간의 추는 한 치의 멈춤이 없다.

한 해를 시작하며 이러한 되돌아봄을 하노라면 나에게는 최근 몇 년이 ‘무너져가는 시간’이 아닌 ‘다시 태어난 시간’이었다. 대구에서 시를 쓰다 부산에 와 출판업에 첫발을 디딘 지가 어언 30년이 되어 간다. 출판 일을 하면서 늘 문학잡지 만드는 일을 늘 접했다. 1980년대 부산 시단의 축을 이룬 무크지 ‘지평’의 마지막인 ‘지평의문학’을 이상개 강영환 김하기 박홍배 정일근 최영철 선배 문인과 반년간지 문학지로 시작한 게 처음이었다. 이후 계간지 ‘문학지평’으로 제호가 바뀌었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중단됐다. 또 시 전문지 ‘시와사상’(당시 발행인 정영태) 창간호부터 5호까지 만든 것으로 기억난다. 이후 ‘가마문화’ ‘게릴라’ 편집에도 관여했다. 부산작가회의 기관지 ‘작가사회’를 잡지로 전환했고 청소년 문화교양지 ‘하이유니’를 창간해 2년 동안 냈다. 잡지는 어느 새 친숙한 동반자 같은 그런 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잡지를 만드는 발행인 입장에서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제일 큰 부분이 매호 들어가는 제작비와 원고료이다. 많은 잡지가 부수를 줄이거나 폐간됐다. 최근 잘 알려진 ‘샘터’마저 발행 중단 위기에서 후원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여 잡지는 생겼다 사라지기 일쑤였다.

특히 문학지는 더욱 부침이 심했다. 1980~2010년 한국문단을 이끈 문학지 가운데 ‘한국문학’은 반년간지로 바뀌었고 ‘세계의문학’ ‘외국문학’ ‘문예중앙’ ‘소설문학’ ‘상상’ ‘시안’ ‘유심’ 등등 사라진 문학지가 수두룩하다. ‘창작과비평’‘현대시’ ‘현대시학’ ‘문학과사회’ ‘문학동네’ 등은 적지 않은 문학잡지가 잘 발행되고 있으나 예전의 중흥기와는 양상이 다르다. 그 사이에 의욕만 앞서 창간했다가 몇 년 못 가고 사라지는 문학지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 또한 2016년 여름 ‘사이펀(siphon)’이라는 시 전문지를 창간했다. 창간을 결심한 이유는 아무리 문학지가 많아도 제대로 읽어볼 함량의 잡지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창간 당시 17종 문학지가 부산에서 나오고 있었다. 실로 놀라웠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요 속 빈곤’ 느낌이 있었다. 더욱 기가 찬 점은 신인 문학인을 양산하면서 원고료는커녕 잡지를 100~200권씩 팔거나 등단비, 심사비 등 명목으로 신인에게 부담을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매호 시, 수필, 소설 등에서 신인을 내보는 것도 보았다. 그렇다고 작품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이 점에 부아가 치밀었다.

의욕으로 ‘사이펀’을 창간했다. 전국의 문학인과 문학 애호가가 즐겨 읽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문학잡지를 부산에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발기인들이 모아준 비용은 2호를 내고 나니 바닥났다. 하지만 몇 호 내고 말 것이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 수익금으로 떼우며 버텨나갔다. 문학지로서 본분을 잃지 않고자 우리 편집진은 노력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독지가의 후원으로 ‘사이펀문학상’(상금 500만 원)을 제정해 시행하게 되었다. 이 문학상은 해마다 수상자를 내고 있다.

연 1회 공모를 통해 신인상(시인·평론가)도 뽑는다. 신인상은 2016년 첫 공모 때 응모자 80%가 부산·경남에 계신 분이었는데, 해마다 지역이 다양해지더니 2019년에는 부산·경남 이외 지역 원고가 80%를 넘었다. 우리의 노력에 전국의 독자들이 보내주는 호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 점은 뿌듯하다.

‘사이펀’은 전국의 독자를 대상으로 시작했다. 부산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지역에서 명성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작품을 쓰는 분을 추천받아 필진을 꾸렸다. 사실 그런 분은 많다. 호를 거듭할수록 후원회원이 하나둘 늘었다. 후원자들은 거의 아무런 조건도 두지 않는다. 오로지 좋은 문학지를 만들어달라는 무언의 주문만 할 뿐이다.

그렇게 3년을 넘기니 지난해 부산문화재단 지원금도 받게 됐다. 그간의 고생이 헛수고는 아닌 것 같아 기뻤다. 문학에 대한 독자의 사랑과 갈증은 여전하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시인·계간 시전문지 ‘사이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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