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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새해 산책 /강이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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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1-19 19:35:0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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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 황태를 넣어 끓인 떡국을 먹고 강변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두 팔을 가볍게 흔들며 십리대숲으로 들어섭니다.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은 순천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 정원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담담한 초록 대숲이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집니다. 곧게 뻗어 오르던 대나무 줄기가 하늘에 이르러 고개를 숙입니다. 부드럽게 휘어진 대나무 아치 아래로 난 흙길을 따라 걷습니다. 올해의 내가 작년의 나에게 묻습니다. 저 대나무 줄기처럼 올곧을 때와 유연하게 숙일 때를 적절히 구별하며 잘 살았는지를요. 키 큰 대나무가 바람에 휘청입니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나는 좀 부끄러워집니다. 바람과 행함이 대등하지 못했던 지난해였습니다. 상승과 성장의 조급한 마음에 제때 고개 숙이지도 못했고 등을 바로 세우며 대범하게 물러설 줄도 몰랐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처럼 내내 다급하게 살았습니다. 자주 이 숲을 걸었음에도 말입니다. 좀 더 멀리 좀 더 오래 걸어야 했을까요.

대숲을 빠져나와 강변을 따라 걷습니다. 왼쪽 오르막으로 태화루가 보입니다.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을 대표하는 누각입니다. 신라 때 태화사와 함께 지어졌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2014년 복원했습니다. 시민의 쉼터이자 좋은 야외공연장으로 되살아난 태화루부터 강폭은 부쩍 넓어집니다. 산에서 평야로 향한 강을 따라 길은 원도심으로 이어집니다. 동헌과 내아가 멀지 않고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쌓은 울산 왜성터도 지척입니다. 강을 따라 들어선 역사의 좌표를 하나씩 읽으며 켜켜이 쌓인 시간과 공간의 응축된 이야기를 떠올립니다.도심을 지나는 강변은 직선에 가깝습니다. 범람을 막기 위해 예부터 쌓아올린 둑이 물길을 억지로 정형화시킨 탓입니다. 양쪽에 들어선 고층 빌딩의 더 높은 둑에 막혀 사람의 삶조차 제대로 흐르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침식과 퇴적이 비단 강의 섭리이기만 할까요. 내줄 때와 거둘 때를 분별함에 어리석음이 없기를 바라봅니다. 현대자동차로 이어지는 명촌 갈대밭을 지나며 드디어 물길은 크게 한 번 돌아나갑니다. 강 위 철교로 무궁화호 기차가 지나갑니다. 객차 네 량이 전부인 작은 기차입니다. 경주를 출발해 태화강역을 지나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겠지요. 손을 들어 크게 흔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목적지까지 잘 가기를 바라요. 수신인 없는 새해 인사가 기차의 꽁무니를 따라갑니다.

갈매기가 보입니다. 곧 바다인가 봅니다. 나는 어느덧 하구에 다다랐습니다. 왼쪽으로 현대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의 호를 붙인 아산로와 현대자동차가, 오른쪽으로 장생포 고래특구와 울산항이 대치하듯 마주 보고 있습니다. 칼군무하듯 맞춰 선 몇천 대의 신차 행렬은 그 자체로 장관이어서 때로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울산항 너머 울산대교까지 지나면 동해가 나옵니다. 어디까지가 강이고 어디서부터 바다인지에 대한 경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반구대 암각화 고래 그림으로 보아 선사시대 바다는 지금의 강 상류까지 너끈히 포함하니까요. 눈을 감고 한 마리 고래가 되어 너른 바다를 헤엄치는 상상도 해 봅니다. 깊어질 때와 넓어질 때를 적절히 알고 흐르는 물속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나는 길 끝에 서서 두 팔을 크게 벌려 바다를 품어봅니다. 새해 첫 해가 동해 위로 높게 떠있습니다. 뱃고동이 울립니다. 먼 길 떠나는 화물선을 환송하는 갈매기떼의 춤사위가 멋집니다. 나는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며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강은 교만을 행하지 않고 집착도 없습니다. 휘돌아 나갈 곳과 내려둘 곳을 적절히 알고 흐릅니다. 좁지만 깊어야 할 때와 얕지만 너르게 흘러야 할 때를 잘 알고 물길을 열어 갑니다. 나는 다짐합니다. 직진과 우회의 바른 이치를 가지고 흐르는 저 강물처럼, 적당한 때와 적절한 방법을 알아 올해는 잘 흐르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행복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한 사람은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시시한’ 즐거움의 하나로 강변 산책을 추천합니다. 강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살기 위해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즐거운 산책 되기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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