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1일 자 각 일간지에는 공통적으로 실리는 지면이 있다. 신춘문예 당선자와 해당 작품이다. 세계에서 한국에만 유일하게 있는 문학 신인 등용문인 신춘문예는 ‘새 봄을 여는 문학 축제’다. 한겨울에 열리는 축제인데, 굳이 사계절 중 봄에 방점이 찍힌 데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겠다. 문단에서 새 출발하는 신인 문인들이 앞날을 새로 연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제일 먼저 신춘문예를 시작한 신문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이다. 매일신문은 1914년 12월 10일 자로 ‘신년문예 모집’을 공지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최초의 신춘문예라고 한다면 1925년 동아일보에서 시작된 것을 말한다. 동아일보는 1925년 신춘문예를 시작할 때 신년 초 공고해 그 해 3월 당선자를 발표했다. 새 봄의 시작점에 당선작이 나왔다는 점에서 신춘문예는 적확한 명칭이다. 해방 이후 몇 년간 중단되었다가 1950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각 일간지에서 다시 도입한 뒤 지방 일간지에서도 마련하고 있다. 12월 초에 마감을 하고, 다음 해 1월 1일 발표를 하는 것으로 굳었다.
한때 한국 문단을 호령했던 거의 모든 문인이 이 신춘문예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대학의 국문과와 문예창작학과 교수 중 상당수는 신춘문예 출신 이력을 자랑한다. 그 과정에는 좌절과 환희의 눈물이 절절 흐르는 감동 스토리가 넘쳐난다.
신춘문예의 위세가 절정에 달한 1970, 80년대에는 웃어 넘기지 못할 가슴 벅찬 사연이 많았다. 당선 소식을 접하고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과 기쁨의 얼굴이 오랜 시간 이어져 평생 인상이 일그러졌다고 과장의 말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문인도 있다. 매년 가을 신춘문예 공모 사고를 접하는 문학 지망생들은 열병을 앓다가 새해 첫 신문에서 대부분은 낙방의 아픔을 확인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문단 관계자들이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했다.
그제 국제신문을 시작으로 전국 신문의 올 신춘문예 시상식이 열리고 있다. 문인들도 참석해 신인들의 앞길에 박수를 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열기는 예전보다는 덜한 편이다. 1990년대 이후 등단제도가 다양해지면서 그 영향력이나 인기가 줄어든 탓이리라. 글을 쉽게 쓸 수 있는 시대 문인들의 위상이 떨어진 연유도 무시 못할 법하다. 그래도 문학 지망생의 창작 역량을 시험하고 문단에 등단하는 길을 여는 관문을 통과한 신예들은 풋풋한 패기와 열정을 보여주길 바란다. 문운이 활짝 만개했으면 좋겠다.
강춘진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