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 방영한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보며 자란 나로서는 참 아쉽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소년 ‘아이캔’이 아버지를 찾아 우주로, ‘별’나라로 떠났는데…, 진짜 2020년이 되고 보니 ‘별’ 볼 일 없다. 별 볼 일 없는 와중에 2019년부터 진행되던 생업은 아직 마무리 못 했다. 별일 없이 살아도 일을 해야 사는데 2020년이 시작되자마자 여행을 떠나게 됐다. 고등학교 동창과 잡아놓은 제2회 수학여행.
여행은 시간 있을 때 가는 것이 아니라 갈 시간을 일부러 빼는 것이라더니 정말 테트리스 맞추듯 스케줄 표를 이리저리 조정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무리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 꽤 많았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기어이 방콕으로 떠났다. 집에 두고 온 일이 많은데 나는 왜 그렇게 가려고 했을까.
하루 2만 보. 분명 힐링 여행을 계획했는데 우리는 극기 훈련하듯 걷고 또 걸었다. 사흘 동안 오전 6시에 일어나 새벽 늦게 잠들었다.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쌓아놓은 이야깃거리를 토해내느라 우리는 24시간이 모자랐다. 한국보다 2시간이 느린 곳이라 그만큼 시간을 벌어놓고 시작한 여행인데 말이다.
누군가에게 내 몸을 맡기는 일은 어색하다. 비용을 지불하는 일이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신체를 짧으면 삼십 분 길면 두 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 풀어주다니 황송하다. 방콕에서 이 황송하고 민망한 마사지를 매일 한 시간 받았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 마사지사가 내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Are you okay? 괜찮아요?”였다. 뭉친 근육에 자극이 올 때마다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괜찮을 리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들에게 “Okay”라고, “괜찮다”고 말했다. 죽을 만큼 아팠지만 시원했고 시원해서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괜찮다는 말에 그녀들은 꼭 이렇게 대답했다. “Thank You.” 그저 형식상 주고받는 대화로 마사지 부위가 달라질 때마다 해야 하는, 매뉴얼에 있는 멘트일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 말을 주고받았다.
마지막 날 마사지를 받다가 첫 괜찮느냐는 질문이 지나갔고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좋으냐, 만족하냐, 는 질문도 있는데 왜 괜찮냐고 묻는 것일까?’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나는 진짜 괜찮은 건가?’ 사실 완벽하게 괜찮지는 않았다. 나의 첫 고양이 봉순이가 14살이 되던 1월 1일 밤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봉순이가 병원에 입원한 사흘 동안 나는 자주 울었는데 동생은 그때마다 내게 울지 말라고 다그쳤다. 마지막 면회 때 마음의 준비를 하라던 의사의 말을 동생에게 전달하던 나는 동생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전화기 너머 동생은 아이처럼 크게 엉엉 울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봉순이를 돌보던 사람은 동생이었는데 동생이 괜찮을지는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도망치듯 여행을 떠난 친구들도 모두 힘들 것이다. 육아와 살림과 직장일과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로 고생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걸었던 것은 생활에서 유지하던 긴장감을 놓지 못했거나 생활에서 도망치려는 마음이 그만큼 커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괜찮냐는 저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괜찮다는 대답을 하고 싶어서, 이곳으로 떠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나와 친구들만 그럴까.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모두가 생활에 쫓기듯 지내고 있었다. 그 사람들도 여행을 보내면 이만큼 많이 걸을 것이다.
4개월 가까이 무겁게 뭉쳐 있던 어깨가 찌릿하다. 나도 모르게 흐억, 소리를 냈더니 괜찮느냐는 질문이 온다. 나는 나를 죽였다가 살려내는 그 작고 따뜻한 손을 향해 괜찮다고 대답했다. 괜찮다고 대답하니, 정말 괜찮은 것 같다. 잠시 후 고맙다는 말이 온다. 내가 괜찮은데 왜 당신이 고마운 건가요. 다시 못 볼 사람의 말이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짐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고생하는 우리 모두의 손을 향해 물어봐야겠다고. 당신, 괜찮은가요? 저쪽에서 괜찮다는 말이 오면 말해줘야지. 고맙다고. 당신이 괜찮아서 정말 고맙다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