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평생을 추위 속에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이 남아 있고,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다시 새 가지가 돋네.” 이 문장은 조선 시대 문장가 신흠이 쓴 시의 구절이다.
새해를 맞아 이 시를 떠올리는 까닭은 우리 마음이 지녀야 할, 굳게 믿어서 지켜야 할 어떤 숭고한 뜻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해의 시작과 중간과 끝에 여일하게 지녀야 할 엄숙한 마음의 결기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위례신도시에 위치한 상월선원(霜月禪院)에 다녀왔다. 상월(霜月)은 서리가 내리는 밤의 차가운 달이라는 뜻이다. 밤에도 빛을 잃지 않고 높이 떠 있는 한월(寒月)처럼 결연하게 마음과 행위를 단속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상월(霜月)은 선원에서 참선 수행하는 수좌(首座) 혹은 수좌의 정신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오동나무의 곡조와 매화의 향기와 어둠 속에서도 고유하게 달이 지니고 있는 빛이라는 본래면목과 버드나무의 불굴의 움틈 등이 ‘상월(霜月)’이 지닌 함의와 다르지 않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상월선원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자승 스님 등 아홉 분의 스님이 동안거 정진을 하는 곳이다. 선원이라고는 하지만 시설이 갖춰 있지 않은 임시 천막의 도량이다. 위례신도시에 향후 법당이 들어설 부지에서 스님들이 지금 용맹정진을 하는 것이다. 스님들이 상월성원에 방부를 들이고 동안거 정진에 들어간 것은 지난해 11월 11일이었다.
동안거에 들어가며 아홉 분의 스님은 다음과 같은 서원을 세웠다. “당신이 보리수 아래서 선정에 들며 맹세하듯 저희도 당신을 따라 맹세합니다.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녹아버려도 좋다. 이 자리에서 죽어도 절대 일어서지 않으리라.”
목숨을 걸고 정진하겠다는 결지(決志)로 꽉 채워진 서원이었다. 특히 상월선원은 무문관 수행처로서 선방의 배식구로 간단한 음식만을 전달받을 뿐 바깥과의 통로를 차단하고 자물쇠를 채웠다. 게다가 상월선원의 청규(淸規), 즉 상월선원에서의 의식주 생활과 수행 방법, 제도 등을 정한 청규는 매우 엄격하다. 하루 14시간 이상 앉아서 정진하고,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옷 한 벌로 지내고, 양치만 하고 삭발과 목욕을 금하고, 외부인과 접촉을 하지 않아 천막을 벗어나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매우 엄격한 규약을 적용하고 있다. 이 규약을 지키지 않을 때는 조계종 승적에서 제외한다는 각서와 제적원을 총무원에 제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러설 수 있는 퇴로마저 차단하고 정진에 들어간 것이니 그야말로 천 길이나 되는 위태로운 절벽 위에 자신을 세운 것이다.
스님들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은 새벽 두 시고 하루 14시간을 정진하는데 50분 동안 참선하고 10분 동안 포행(布行), 즉 잠시 천막 안을 걷는 방식으로 수행은 이어진다. 천막의 시설이니 추위가 가장 큰 문제이다. 스님들은 대중이 넣어드리려는 발열조끼와 같은 보온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도 거부한 채 수행의 열기로써 이 엄동의 한파를 이겨내고 있다.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는데 그 양도 많지가 않다. 쌀밥의 경우 이백 그램을 채 넘지 않는 양이니 몸을 지탱할 만큼만 공양을 하는 셈이다.
아홉 분 스님의 정진을 ‘천막 수행 결사’라고 일컫는 데에는 이러한 수행의 엄격한 조건과 계목에도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스님들의 용맹정진이 우리나라 불교의 선풍을 다시 진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며칠 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상월선원을 방문해 설한 법문에서 “상월선원 천막결사는 무엇으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귀감이 되는 결사입니다. 엄동설한 속에서 스님들이 한국불교 중흥을 위해 용맹정진하고 있습니다. 이제 해제하는 날 큰 해가 아홉 개가 뜰 것입니다”고 이른 뜻도 이러한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불교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결사 운동으로는 잘 알려진 대로 고려 시대의 지눌 스님이 벌인 정혜결사를 꼽을 수 있다. 지눌 스님은 “부처가 입으로 말한 것은 교(敎)요, 조사가 마음에 전한 것은 선(禪)이다”며 선교 간의 갈등을 극복하려 했고, 또 불교계 내부를 혁신하려고 했다. 성철 스님과 청담 스님, 자운 스님, 우봉 스님 등이 일으킨 봉암사 결사도 청정한 수행을 실천에 옮긴 대표적인 결사운동이었다. ‘부처님 법대로만 살자’며 수행자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 했다. 그리고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만들어 그대로 실천했다. 공주규약의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되었다. “일상에 필요한 물품은 스스로 해결한다는 목표 아래 물 긷고 나무하고 밭일하고 탁발하는 등 어떠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작인의 세금과 신도의 특별한 보시에 의존하는 생활은 완전히 청산한다. 용변 볼 때와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늘 장삼과 가사를 입는다. 사찰을 벗어날 때는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으며 반드시 함께 다닌다. 가사는 마나 면으로 한정하고 이것을 괴색(壞色)한다. 날마다 한 번 능엄대주를 독송한다. 날마다 두 시간 이상의 노동을 한다. 공양은 정오가 넘으면 할 수 없으며 아침은 죽으로 한다. 앉는 순서는 법랍에 따른다. 방사 안에서는 늘 면벽좌선하고 서로 잡담은 절대 금한다. 정해진 시간 이외에 누워 자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필요한 모든 물건은 스스로 해결한다.”
이처럼 결사 운동은 한국불교의 청정가풍을 선양하고 발심수행의 의욕을 다시 불러 일으켜온 자정과 쇄신의 운동이었다. 상월선원의 천막결사는 불교 신도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국의 불자들이 상원선원을 찾아 기도와 철야 정진을 하며 아홉 분 스님의 뜻을 받들어 이어가고 있다. 한국불교의 밝은 미래를 위한 초석을 놓을 아홉 분 스님의 상월선원 천막결사가 보다 많은 대중의 관심과 외호(外護) 속에 원만하게 회향되기를 기원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