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연봉 3500만 원이 안 되는 것도 슬프고, 3500만 원을 간신히 넘겨 대출(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을 못 받는 것 역시 슬픈 일이죠. 부산에서 청년으로 살아온 삶은 ‘그저 존재만 할 뿐’입니다.”
국제신문 설문조사에 참여한 ‘청년 졸업생’ 김지혜 씨가 탄식한다. 그녀는 1985년 부산에서 태어나 지난해 청년(만 34세까지)을 졸업했다. 고향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나왔다.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서 10년 넘게 일한다. 아직 보증금 2000만 원, 월세 30만 원짜리 방에 홀로 산다. 지난해 격주 주말 근무까지 더해 직장생활 10년 차에 받은 연봉은 세전 3546만 원. 46만 원이 초과해 청년 대출을 못 받았다. 이젠 만 34세가 넘어 청년 대출 대상조차 안 된다.
34년을 산 고향 부산은 따뜻하지도, 넉넉한 삶을 선물하지도 않았다. 언제쯤 월세방을 벗어나 1억 원짜리 전셋집으로라도 이사하고, 여윳돈을 모아 결혼할 수 있을지 기약 없다. 그렇게 부산에서 청년으로 살아온 삶은 그저 존재할 뿐, 특별한 의미가 없다. ‘쌔빠지게’ 공부하고 일했지만, 외롭고 고달픈 기억만 남았다.
1985년 부산이란 도시에서 세상을 처음 마주한 5만7212명의 김지훈·김지혜 씨는 이제 더는 청년이 아니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란 사회 분위기가 출생 때부터 그들을 잔뜩 주눅 들게 했다. 기성세대가 시키는 대로 힘든 경쟁을 뚫고 죽을 둥 살 둥 공부했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약속한 성공은 쉬이 찾아오지 않았다. 취업 전선에 뛰어든 때는 ‘세계 금융 위기’로 불린 무지막지한 불황이 덮쳤다. 부산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배운 대로, 생각한 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는 삶이었다.
수많은 김지훈·김지혜 씨가 ‘살기 위해’ 부산을 떠났다. 부산에 남은 김지훈·김지혜 씨도 원도심 등 부모 세대가 삶을 일궜던 곳을 벗어나 ‘그들만의 공간’으로 옮겼다. 그리고 높은 벽에 갇혔다.
김지훈·김지혜 씨가 빠져나간 동네마다 소멸 위기에 놓였다. 순서는 이렇다. 청년이 나가고 아기 울음이 끊기면, 취학 아동이 급감하고 학교가 문을 닫는다.
학교가 없어지는 건 소멸의 신호탄이다. 출산·육아·교육·문화·의료·교통 인프라가 줄줄이 사라진다. 일자리도 씨가 마른다. 그러면 동네에 더는 청년이 들지 않는다. 동네를 시작으로 구·군, 나아가 부산시가 위기를 겪는다. 부산은 청년이 꿈꿀 수 없는 도시가 된다. 반대로 청년이 모이고, 사람이 늘고, 인프라가 확충되는 ‘수도권 공화국’만 살 만한 세상이 된다. 김지훈·김지혜 씨의 고향은 갈수록 낡고 병들어 간다.
국제신문은 새해 기획 시리즈로 ‘청년 졸업 에세이 - 1985년생 김지훈·김지혜’를 보도하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또 진부한 청년 얘기냐”며 “라떼(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일장 훈시를 하고 싶은 분도 있겠다. 그러나 누가 김지훈·김지혜 씨의 34년간 삶을 치열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그들이 나약해서, 배가 불러서, 욕심이 지나쳐서 고향을 등진 것일까. 청년이 부산을, 원도심을 빠져나간 게 아니다. 부산이 청년을 밀어냈다. 과연 우리는 청년에게 “부산에 사는 게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청년이 없으면 지역이 죽으니 제발 남아 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청소년의 가장 큰 고민이 ‘공부’나 ‘외모’가 아니라 ‘직업’인 시대가 됐다(통계청 2018년 사회조사).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한창 멋 부리고, 이성에 관심을 가질 시기에 취업은 할 수 있을지, 연봉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상황이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잖은가. 적어도 ‘라떼’는 허황한 꿈이라도 꿀 수 있지 않았나.
더 살기 좋은 곳, 더 좋은 일자리가 있는 곳,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곳으로 떠나는 김지훈·김지혜 씨를 탓할 수 없다. 그들에게 부산에 남아 지역을 살려 달라고 억지 부릴 수도 없다. 먼저 부산을 청년이 꿈꿀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청년이 돌아온다. 부산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기획탐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