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메카 미국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상은 당연히 아카데미상이다. 오스카상이라고도 하는 아카데미 트로피를 차지하는 영화는 당대 주목받은 작품들이다. 매년 초 발표하는 아카데미상의 수상 결과를 미리 알려주는 이벤트가 있다. 바로 골든글로브상 시상식. 1943년 설립된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가 1944년부터 영화 및 TV프로그램과 관련해 시상하는 골든글로브상은 아카데미상과 함께 미국 양대 영화상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영화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상의 외국어영화상 부문은 항상 주목받는다. 역대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은 아시아권에서 일본영화가 주로 거론됐다. ‘붉은 수염’ ‘가게뮤샤’ 등을 만든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5회나 후보에 오른 것을 비롯해 일본영화는 10여 회나 명함을 내밀었다. 2007년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일본 배우들과 함께한 일본·미국 합작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일본을 제외하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권의 영화는 이 상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러니 한국 팬들에게 골든글로브상이라는 단어가 다소 낯선 언어로 다가온다. 한국영화는 그동안 베니스, 칸, 베를린영화제 등 이른바 세계 3대 국제 영화제에서 적지 않은 별을 탄생시켰지만 영화의 본산 격인 미국의 아카데미상 등은 항상 남의 나라 잔치로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1919년 ‘의리적 구토’로 시작한 한국영화는 100년 동안 미국 영화계의 두꺼운 장벽을 뚫지 못하다 올해 드디어 일을 냈다. 그제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빈부 격차와 계급사회의 희비극을 묘사한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한국영화 101년 만에 미국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는 깃발을 꼽은 셈이다.

1944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개최 이래 한국어로 수상 소감이 현장에서 전해진 건 올해가 처음이라는 의미도 각별하지만,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는 세상을 말한 봉준호 감독이 던진 메시지의 울림은 남다르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는 영화입니다.”

‘기생충’은 다음 달 9일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상의 외국어영화상 외에 주제가상(‘소주 한 잔’) 등의 예비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수상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새해 벽두 전 세계에 통하는 ‘단 하나의 언어’의 가치와 위력을 한국영화가 보여준 올해 골든글로브상 소식이 반갑다.

강춘진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