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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뜻밖의 감사 /김부경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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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1-06 19:48:20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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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0년 전까지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던 불치의 병이 있었다. 1890년께에는 이 병이 10대에 발병할 경우 평균 1.3년 후, 30대에 발병할 경우 4.1년, 50대에 발병할 경우 8년 후 사망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시한부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45년께에는 이 병이 발병한 경우에도 약 30년의 인생을 더 살게 된다. 1921년 이 병의 치료제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이 위대한 치료제는 인슐린(insulin)이다. 이 무시무시한 병의 정체는 우리나라 30세 이상 인구의 14.4%, 65세 이상 인구의 28. 8%가 앓고 있는 너무나 흔한 병, 바로 ‘당뇨병’이다. 오늘날 당뇨병을 진단받는 사람 중 그 누구도 ‘내가 곧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당뇨병의 유병률이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은 발병률이 높아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당뇨병 환자들의 생존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도 큰 요인이다.

캐나다의 정형외과 의사였던 밴팅(Frederick Banting)과 토론토대학의 의과대학생이자 생리학 교실의 실험 조수였던 베스트(Charkes Herbert Best)는 1921년 개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해내고, 그 추출물로 당뇨병에 걸린 개를 치료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소의 췌장에서 추출한 인슐린으로 1922년 14세 소년을 최초로 치료하게 된다. 이 소년의 혈당은 하루 사이에 520mg/dl에서 120mg/dl로 내렸고, 뼈에 가죽밖에 남지 않았던 소년은 인슐린 치료를 받고 몇 주 뒤 통통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된다. 이 소년은 27세에 폐렴으로 사망할 때까지 13년을 더 살게 되었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당뇨병 환자들과 그 가족은 이 기적의 치료제를 얼마나 구하고 싶었겠는가. 그러나 소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얻는 방식으로는 대량 생산을 할 수 없었다. 소 한 마리가 매우 비쌌던 점을 고려할 때, 오늘날의 빌 게이츠나 우리나라의 재벌쯤 되는 재력가들이 대서양을 건너 이 인슐린을 구하러 오지 않았을까?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재벌이 아니라도, 당뇨병 환자는 누구나 인슐린을 처방받을 수 있다. 최초의 인슐린 이후 눈부신 기술 발전으로 인슐린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 환자들이 처방받고 있는 인슐린들은 유전자재조합 기술에 힘입어 이전의 인슐린보다 훨씬 편하고 안정된 인슐린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부터 인슐린 약뿐 아니라 주삿바늘과 혈당 체크에 필요한 소모품까지 의료보험 혜택을 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진료실에서 인슐린을 처방받는 환자 가운데 누구도 기뻐하거나 감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죽을상을 하며, ‘선생님, 저는 죽어도 인슐린은 안 맞겠습니다’고 한다. 인슐린이 없어 당뇨병으로 죽었던 사람들의 심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경구 혈당강하제가 발명되기 전까지 인슐린은 당뇨병의 최초 치료제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치료제였다. 그전까지 당뇨병의 유일한 치료법은 적게 먹도록 하거나 굶기는 것뿐이었다. 실제로 당뇨병 환자 중에서는 치료 중 굶어 죽는 환자도 많았다. 그 당시 인슐린을 구할 수 있었던 환자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뻐했을지 상상해 본다면, 오늘날 환자들의 반응은 참으로 뜻밖이다.

진료실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당뇨병을 없애는 약은 없느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당신이 처방받고 있는 그 약이 바로 그 기술 발전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더 자세히 알려주고 이해시켜주고 싶다. 질병이 찾아오는 것은 분명 불행이지만,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의학 발전의 혜택은 분명 행운이다. 마치 공기처럼 너무 흔하고 당연한 것이 되어 우리가 잊었을 뿐이다. 경자년(庚子年) 새해에는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누려왔던 것이 얼마나 놀라운 혜택인지 곰곰 생각해보자. 우리 주위에는 감사할 것이 가득하다.

고신대 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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