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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우리에겐 ‘좋은 사건’이 더 필요하다 /임규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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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1-05 19:17:5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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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과 전망의 시간이다. 삶의 중심에 놓았던 것은 덫으로, 상처로 변하기 십상이다. 장 그르니에는 ‘섬’에서 “매 순간 우리들의 상처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이 새어나가도 속수무책”이라고 했다. 최인훈 선생은 ‘광장’ 일역판 서문에서 “살아가는 누구나, 이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 저마다 짐작을 가지고 살아간다. (중략) 그런데 그 삶의 짐작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힘으로 깨닫기는, 혼자 태어나기가 어려운 만큼이나 어려운 시대라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허둥지둥하게 된다”고 적었다. 최인훈 선생의 ‘짐작’은 ‘전망’일 게다. 점검과 전망은 옳다. 감수성, 관점, 시간 그리고 사건의 차원에서 점검하고 전망하는 것은 무용치 않으리라.

감수성은 사람 수만큼 있다. 공부에 대한 감수성, 운동에 대한 감수성, 타인에 대한 감수성, 유머에 대한 감수성, 일에 대한 감수성, 진부함에 대한 감수성 등등. 타고난 감수성이 있는 반면 필요한 감수성도 있다. 정치적 감수성과 돈에 대한 감수성이 그것이다.

정치적 감수성은 실은, 정치인에게는 큰 필요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다”고 말한 뜻은 일상생활 대부분이 정치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또 방어적 차원에서도 정치적 감수성은 필요하다. 정치적 감수성은 관계를 만들고, 관계는 미래를 결정짓는다. 그리고 정치적 감수성은 도구화되는 것을 막아준다. 타인의 시간과 노력을 빼앗는 도덕적 착취는 보통 근사한 가면을 쓰고 달콤한 말과 함께 다가오기에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관점은 ‘누구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정당하면서도 좋은 관점을 가지는 것은 관성의 힘을 뚫어야 하므로, 쉽지 않다. 우리는 강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데에 익숙하다. 자연스럽기조차 하다. 미국 관점에서, 중국 관점에서, 대기업 관점에서, 특권층 관점에서 그리고 서울의 관점에서. 오류다. 시대착오다. 혹 관점의 잘못 때문에 ‘현실성이 가능성을 뭉개고 있는 현실’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자신의 관점을 세운 후 호혜적 희망을 설득하는 것이 정당하고 좋은 관점이다. 문제해결과 탁월함은 거기서 싹을 틔운다.

시간은 고통일 수 있다. 현재라는 시간도 상대적이다. 물체 덩어리에 가까울수록, 빨리 움직일수록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현재만 실재이고 과거와 미래는 실재가 아니라는 현재주의는 곧잘 허위의식과 결합한다. 그래서 옹졸하고 치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과거는 우리를 인도하므로 우리 ‘앞’에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모두 중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에는 소유관계가 명확하다.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겉도는 시간도 있다. 광장과 밀실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듯 몰입하는 시간과 겉도는 시간은 서로 관계 맺고, 통해 있어야 한다.

세상은, 삶은 사건이다. 이탈리아 태생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인간은 사건들 사이의 관계다. 세상은 서로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관점들의 총체와 같다”고 말했다. 삶을 통해 생기는 의지가 아니라 ‘사건’에서 나온다. 감수성과 관점과 시간은 사건에 이르러서야 통합되고 구현된다. 개인의 삶이건, 도시의 집단적 삶이건 좋은 사건이, 절실하다.

좋은 사건은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고, 더 많은 사람과 향유하게 하고, 더 나은 위치에 있게 하고, 더 뿌듯하게 하고, 더 아름답게 기억되게 하고, 우정을 낳고,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사건을 통해 새로운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관계가 형성된다. 관계에서 양은 질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관계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관계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사건의 입장에 서면 인간과 사물과 사정은 달라진다.

현실성에 질식되지 않은, 가능성에도 몰입하는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때로 실망하고 슬프고 우울할지라도 타고난 감수성에 필요한 감수성이 더해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탁월한 관점을 세우며 인간 삶에 내재한 시간의 고통을 덜 느끼는, 좋은 사건을 만들고 좋은 사건이 이끄는 대로 몸을 내맡기는, 그리하여 근사한 2020년이 되시기를.

작가·도서출판 함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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