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매서운 바람이 그라운드의 지표면을 거칠게 쓸어가는 한낮, 정규 리그를 마친 팀원들이 연습경기에 앞서 한창 몸을 풀고 있다. 다음 리그를 준비하기 위해 이마엔 벌써 구슬땀이 맺히고, 자신의 기량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결연한 의지로 더그아웃은 후끈하다. 그리고 이맘때쯤, 대부분 사회인 야구팀은 총회를 거쳐 으레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곤 한다. 필자가 소속된 3개의 야구팀(토요리그 1개 팀, 일요리그 2개 팀)도 다소의 진통을 겪으며 어렵사리 감독을 추대하였다.
흔히 감독이라고 하면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앉아보고 싶어 할 자리일 것이다. 팀 전체를 장악하는 절대적 힘을 지니며 선수 기용 그리고 다양한 작전을 자신의 소신과 경기 철학에 따라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선수들 모습을 보며, 은근히 인간 내면에 자리한 지배와 권력에 대한 욕구가 꿈틀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한을 가진 감독을 뽑는 것을 사회인야구팀에서는 왜 힘들어하는지 대부분 사람은 조금 의아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엘리트 야구와 달리 사회인 야구는 친목을 목적으로, 야구를 좋아하고 이를 통해 체력을 증진하려고 만들어졌기에 경기 승부도 중요하지만 회원 간 유대 관계와 팀워크를 무시할 수만도 없다. 또한 리그 경기 참가와 팀을 꾸려가기 위해 필요한 경비를 각자가 회비 형식으로 갹출하기 때문에 회원 개개인의 권리도 매우 중요시된다.
이런 여러 조건 때문에 경기를 치를 때마다 감독 역할이 절대 만만치가 않다. 필자도 소속된 3개의 팀에서 모두 감독을 거쳤지만, 그중 가장 힘든 경험으로 다가온 딜레마는 바로 ‘즐기는 야구를 할 것인가, 이기는 야구를 할 것인가’였다. 상대 팀 전력을 분석하며 실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해 경기를 운영할지 아니면 참석한 팀원을 고르게 경기에 투입할지가 시즌 내내 화두였다. 실력 위주로 운영하다 보면 경기에 이길 확률은 높지만, 경기에서 뛰지 못한 대다수 회원의 불만이 높아지고 그 반대 경우엔 경기에 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주 초래해 이래저래 감독은 잘해야 본전인 것이다. 이뿐 아니라 여타 이유로 대부분 감독직을 꺼리는 게 아닐까 싶다.
스포츠 특히 구기 종목에서 감독 유형을 살펴보면 탁월한 전략과 풍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승부를 거는 지장(智將), 과감한 결단력과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이끄는 용장(勇將), 그리고 선수들을 믿고 껴안으며 서로 소통을 통해 이런 ‘케미스트리’를 경기에서 극대화하려는 덕장(德將)으로 나눌 수 있다.
십수 년 전, 필자가 야구를 시작할 때는 감독 권한이 절대적이었고,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팀을 이끄는 지장 혹은 용장 리더십에 대해 팀원들이 별다른 이의 제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엔 사회인 야구팀 수도 많이 늘어나고, 팀원 각자의 목소리와 개성도 다양해져 감독과 갈등· 불화가 생기면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최악의 상황엔 미련 없이 다른 팀으로 옮기거나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다.
따라서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 감독은 이러한 팀원들의 사소한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요구를 최대한 존중하며 이를 팀 운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열린 마인드가 필요하다. 덕장으로서의 리더십, 나아가 상호 소통과 배려의 자세가 오늘날 진정한 감독의 자질이 아닐까 한다.
4월 총선이 다가온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가장 낮은 자세에서 민의(民意)가 무엇인지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이를 곧장 행동으로 옮겼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덕장으로서 모든 팀원 스스로가 세워주는 권위, 바로 그 조용한 카리스마가 필요한 우리 시대이다.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