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든 그 도시를 대표하는 공공 공간이 있다. 뉴욕 센트럴공원, 리버풀 버컨헤드공원, 시카고 밀레니엄공원, 파리 콩코드광장, 바티칸 성베드로광장 등은 그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간직하며 시민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이곳은 사적 영역에서 가능한 행위와 구별되는 공적, 종교적, 상업적 또는 정치적 행위가 이뤄지는 장소이다. 나아가 혼잡하고 어지러운 도심에서 마음 편히 휴식과 여유를 취할 수 있으며 시민의 교류와 소통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공공 공간은 도시에 활력과 어메너티(amenity)를 제공, 건강하고 활기찬 도시를 만들어 준다.
광장과 길로 독특한 도시공간을 형성한 서구 도시와 다르게 부산은 광장이라는 공공 공간에는 익숙지 않은 편이다. 주변을 살펴보면 송상현광장, 해운대 구남로 문화광장, 유라리광장 등 몇 곳 되지 않는 데다 대규모 행사나 집회 장소로는 협소한 편이다. 이에 비해 부산에는 부산시민공원, 용두산공원, 송도암남공원, 민락수변공원, 태종대공원등 많은 도심공원이 있다. 이처럼 광장보다는 공원을 더 많이 확보한 데에는 부산의 지형적 여건과 이형(異形)적 도시성장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부산만이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조건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강, 바다, 산, 습지, 섬, 해변으로 이뤄진 아름다운 도시공원과 도심 풍경이 한데 어우러진 부산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최근 새로운 관광루트가 만들어지고 있다. 바로 골목길 투어가 부각돼 인스타그램에 좋은 골목, 즐거운 체험이 올라오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골목관광이 늘고 있다. 2011년 시작된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기점으로 도시공간구조 변화와 도시재생이라는 주제로 원도심 풍경이 점차 변하고 있다. 거미줄처럼 엮여 어두웠던 동네 골목길이 도시재생뉴딜사업으로 새 단장을 하고 있다.
이제 부산도 다른 도시 못지않은 골목길이라는 공공 공간을 새삼 갖게 된 것이다. 가끔은 텅 비워지는 광장보다 사람 냄새와 인정이 넘치는 따뜻한 골목길이 부산의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광장(plaza)은 폭이 넓은 거리(broadened street)를 뜻하는 라틴어 ‘platea’에서 유래했다. 광장은 길과 연속된 공간으로, 길이 넓혀진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조금 더 넓은 도시공간으로 확대해 본다면 길을 경계해주는 도시블록도 길이자 광장이 될 수 있다. 평편한 바닥으로 비워진 공간뿐 아니라 우리 일상과 삶이 연속되는 공간도 또 다른 의미에서 광장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독특하고 다양한 골목이 산재해 있다. 동네마다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담아 제각기 소리를 내지만, 공간적 한계로 단편성에 머무는 실정이다. 이제 그 골목길들을 서로 연결해 통합적인 골목길로, 새로운 타입의 광장 역할을 하도록 끌어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부산만의 인문적, 자연적 환경여건을 활용한 골목길의 연계성도 고려해볼 만하다. 대학 3곳, 박물관, 부산문화회관, 유엔기념공원,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자리한 부산 남구에 커다란 골목길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부산박물관~부산문화회관~국립일제강점동원역사관으로 이어지는 문화체험 골목길, 경성대~부경대~동명대를 탐방할 수 있는 교육 골목길, UN조각공원~UN기념공원~평화공원~수목전시원으로 연결된 자연 골목길이 서로 교차되어 어울리면 어느 도시 못지않은 ‘골목길 광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도로와 건물에 막혔던 골목길이 문화와 교육과 자연이 서로를 위해 주는 골목길 광장을 통해 어우러지고 다양하고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더하면 얼마나 좋을까.
골목길 광장은 공동체를 즐기는 곳이자 점차 늘고 있는 혼족이 함께 어울리며 도시로 변모하며 확대되는 우리네 일상의 장소다. 골목길에서 상호존중과 배려를 배워가면 삶이 풍요롭고 여유로워질 것이다. 이럴 경우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널리 확산되어 이웃과 즐기는 도시, 함께 나누는 도시로 진화함으로써 부산만의 도시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신설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