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 르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이스라엘 정상회담을 가졌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공식 오찬 답사에서 지식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유대교 경전인 ‘탈무드’를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이 사례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상징적인 행위였다.
첫째, 유대계 국민도 없고 역사적으로 유대인들과 별 관련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탈무드라는 책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어떤 지혜의 보고처럼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특이한 일이며, 리블린 대통령은 이러한 한국의 문화적 분위기를 고마워하는 표시로 선물을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리블린 대통령의 선물은 수많은 탈무드 소개서가 있지만, 탈무드 자체는 없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현실을 드러내는 거울이기도 하다. 현재 인터넷 검색을 하면 1초도 걸리지 않아서 탈무드 관련 도서를 3000건 이상 찾을 수 있지만, 대부분 탈무드 소개서나 주제에 따라 발췌한 번역서, 어린이를 위한 동화뿐이다. 한글로 탈무드를 읽거나 공부할 수는 없고, 따라서 탈무드라는 책의 내용은 물론 그 외형적 특징을 알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출판시장은 깊지는 않아도 흥미로운 지식을 요구하고, 우리는 탈무드 인쇄본이 4절지 크기의 책 20권짜리 전집이며, 영어번역본 중 어떤 것은 70권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주이스라엘 한국 대사가 이스라엘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가정 중에 탈무드가 없는 집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이스라엘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그분은 ‘탈무드의 지혜’나 ‘탈무드의 유모어’ 같은 책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했겠지만, 이스라엘 기자를 만나면 지금도 정말 한국 사람들은 집집마다 탈무드를 소장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런 창피한 상황은 일차적으로 연구자들이 게을렀던 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탈무드를 비롯한 유대학 연구기관이나 학교가 없는 상황에서 연구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기초 연구를 할 여력이 없는데 독자의 입맛에 맞는 글을 강요받다 보면 시장에서 팔릴 말랑말랑한 교양서를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이 상황은 단순히 탈무드나 유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의 말과 글을 원본으로 탐구하여 인간의 본성에 관한 연구결과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면, 대학에서 인문학의 기초가 되는 어문학이나 역사 관련 학과들을 없애고 기초과학 기술에 투자하지 않다가 일본의 무역 제재를 당한 뒤 당황하는 우리 사회는 인문학의 불모지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이지만, 유대인은 책의 민족이라고 부를 만큼 고전을 연구하고 재해석하는 문화를 발전시켜 온 사람들이다. 이러한 인문학적 기초는 그들이 한국을 대할 때도 유감없이 힘을 발휘한다. 필자가 유학 생활을 하던 1990년대 초에 즉 한류가 인기를 얻기 훨씬 전부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은 동아시아 학과에서 학생들에게 중국어 일본어와 함께 한국어를 가르쳤고, 외교부 관리들이 한국에 발령받고 수업에 들어오기도 했다. 동아시아 학과에 다니던 이스라엘 대학원생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민주화운동사에 관해 학위논문을 쓰는 것도 보았다. 지금은 히브리 대학에 한국인 교수는 물론 한국어 강사가 세 분이 있고, 한반도 정치상황을 전공한 이스라엘 교수가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신문도 한반도 관련 정세를 주의 깊게 관찰하며 기사들을 싣고 있다.
이런 이스라엘과 한국은 올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고 국회 비준만 기다리고 있다. 일본 이외에 원천기술과 첨단기술을 다량으로 보유한 새로운 거래자를 찾아야 할 다급한 입장이었던 우리에게 원래 의약품이나 하이테크 산업은 물론 무기 제조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스타트업 기업의 천국인 이스라엘은 일종의 해결사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역사는 물론 탈무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우리가 직접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 사회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만났는데 누구에게 유리한 협정이 체결되었을까?
이미 많이 늦었지만 현재 국내에서 탈무드를 연구할 능력이 있는 기관으로 건국대학교 중동연구소가 있다. 이미 ‘유대학 용어사전(디지털 데이타베이스)’을 내고 ‘유대전통 문헌 미쉬나 주해 총서(모두 8 권)’ 작업을 진행 중이어서, 어느 정도 내공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소를 이끌던 소장의 은퇴가 다가오면서 연구소가 폐지되고 연구 인력이 뿔뿔이 흩어질 상황이다. 이 시점에 탈무드가 우리나라에 온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건국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