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부산에서 오랫동안 살았다고 하면 대개는 “바다가 가까워서 좋았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고는 예외 없이 해운대나 광안리, 태종대 등 바닷가에 얽힌 자신들의 추억 한 두가지를 꺼낸다. 이런 경향은 젊은 층일수록 더하다. 요즘은 민락수변공원이 우리나라 청춘남녀 사이에서 꼭 한 번 찾아가봐야 할 곳으로 떠올랐다는 소식도 이들에게서 들었다.
이럴 때면 농담 삼아 부산 산다고 늘 동네 산책하듯 바다에 갈 거라는 상상은 하지 말라고 말한다. 경주 사람인들 늘 석굴암에 들르는 것은 아니며 강릉에 거주한다고 항상 정동진에 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우스갯소리도 곁들인다. 그렇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타지인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바다가 너무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잊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그래서인지 요즘 항만 미세먼지 소식이 나오면 뜨끔해진다. 오늘의 부산을 있게 한 바다가 이제는 시민의 건강을 해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근데 사실 이런 가설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태곳적부터 거기에 있어온 바다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항만 미세먼지 배출은 바다를 무분별하게 이용한 사람들이 저지른 업보다.
항만 미세먼지가 부산 환경오염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특히 운항 선박이나 관련 시설 등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부산 전체 미세먼지의 절반을 넘는다고 하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다량의 황이 포함된 벙커C유 등이 선박연료로 쓰이는 까닭이다. 대형 선박 한 척이 뿜어내는 초미세먼지가 트럭 50만 대가 배출하는 분량과 맞먹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니 부산은 ‘비도로이동오염원’이 ‘도로이동오염원’보다 4.8배나 높다. 부산에 ‘세계 10대 초미세먼지 배출 항만’이라는 오명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 부산항은 내년 1월 1일부터 ‘항만대기질관리구역’이 된다. 정부는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항만지역 등 대기질 개선에 관한 특별법’(이하 항만대기질법) 시행령 개정안을 가결했다. 올 4월 2일 관련법이 공포된 후 8개월 만이다. 이 법은 부산항과 울산항 등 전국 대형 항만과 주요 항로를 ‘항만대기질관리구역’로 지정했다. 이어 이 구역 내에 ‘배출규제해역’과 ‘저속운항해역’(속도 12노트 이하)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항만 미세먼지 공포에서 마침내 벗어나게 됐다고 마냥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항만대기질법이 시행되나 여전히 허점이 많아서다. 대표적인 게 선박에 친환경 연료를 주입하기 위한 육상전원공급설비(AMP) 구축이다. 해양수산부는 2030년까지 부산(62기)을 비롯한 전국 13개 주요 항만의 248개 선석에 AMP를 설치한다. 해수부는 모든 AMP가 본격 가동되면 부산의 경우 항만 미세먼지 배출량이 현재 4930t에서 3185t까지 줄 것으로 예상한다. 감축률 64.6%로 전국 항만 가운데 가장 높다.
우려되는 바는 AMP 사용에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다. 해수부는 항만 사용료 감면 등의 혜택을 통해 선사들의 동참을 유도하기로 했다. 또 AMP 이용 때 납부해야 하는 전기세를 줄이는 방안도 산업통상자원부 및 한국전력과 논의를 계속할 계획이다. 그러나 의무조항이 아니다 보니 선사들이 이런 조건을 수용하지 않아도 해수부로서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선사들 반발을 의식해 규정을 아주 느슨하게 만들었다고 일침을 놓는다.
미세먼지 절감 정책과 관련해 정부가 지역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는 것도 문제다. 부울경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지역의 환경문제를 전담할 수 있는 권역별 대기환경청 신설을 요구해왔다. 항만 미세먼지 피해가 유독 심한 부산으로서는 체계적인 연구·분석과 지역에 맞는 대책 수립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런데도 정부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낙동강유역환경청에 관련 부서를 만들어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서울·경기지역에는 2005년부터 ‘수도권 대기환경청’이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오랜 기간 관련 분야를 다룬 전문 인력만 61명에 달하니 뒤늦게 대기업무를 겸임하게 될 낙동강유역환경청과는 모든 면에서 큰 차이가 생길 것은 뻔한 일이다.
대기 오염이 가져오는 피해는 한 곳에 국한되지 않는다.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없으면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업계 눈치를 보거나 특정지역 현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서는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타임지 ‘2019년 올해의 인물’로 뽑힌 스웨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왜 이 일에 뛰어들었느냐는 질문에 “민주시민이라는 책임 때문에 오늘이라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환경문제에는 ‘다음에’란 전제가 붙으면 안 된다. 대처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우리의 ‘숨 쉴 권리’도 사그라지는 까닭이다.
세종본부장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