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강동진 칼럼] 도시 규제의 경제학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12 19:20:34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990년대 초반, 필자는 서울의 북촌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당시 북촌은 도시형 한옥이 밀집되어 있어 서울시 조례에 따라 한옥보존지구(제4종미관지구)로 지정되어 있었고, 이를 해제해 달라는 주민 시위가 극성을 이루고 있었다. 올림픽 후 개발시대의 후유증이 본격화되던 시점과 맞물린 때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북촌은 쏟아지는 관심이 ‘불편해진’ 서울의 보석 같은 곳으로 변신했다.
그림 서상균
또 하나 예를 든다. 1970년대 초반, 전국 도시 외곽에 둥그런 모양의 그린벨트가 그려졌다. 엄청난 양의 토지가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버렸다. 의도와 목적은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토지 소유자들에 대한 배려 부족에 따른 불만과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여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개발제한이 설정되지 않았다면 전국 대도시와 위성도시가 모두 연결되어 거대도시를 이루었거나 전 국토가 난개발되고 말았을 것이다. 두 예는 극단으로 상반되지만, 공통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다. 도시규제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필수불가결의 선택이었다는 점과 도시규제로 인해 손해 보고 고통받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도시는 시민의 교육·경제·문화 수준과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인다. 이 변화를 올바르게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미래에 변화될 인식과 삶을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일이다. 필자의 관점에서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연환경과 역사문화를 다음 세대에 올바르게 물려주는 일을 최우선으로 꼽고 싶다. 사실 이런 생각은 오래전부터 전 세계에서 시도되어 왔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만연된 개발주의와 대자본 중심 물질문명 속에서 개인들의 작은 기증을 통해 지역 역사환경을 지켰던 내셔널트러스트운동과 다양한 동식물의 온전한 서식처이자 수려한 풍광의 대규모 자연지대를 보호하기 위한 국립공원제도를 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20세기 초·중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도시경관을 공공재로 이해하고 이를 보호하려는 다양한 제도가 탄생하면서 공익 추구를 위한 도시규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1950, 60년대 도시재개발 물결 속에서, 파리 도심의 역사문화와 도시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 재산권을 규제했던 ‘말로법(Marlaux Act)’이 본격적인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가끔 궁금해지는 장소와 풍경을 나열해 본다. 샹젤리제 거리와 파리지앵이 사랑하는 뒷골목들, 뉴욕 맨해튼의 드라마틱한 스카이라인, 교토의 정교한 석조 계단길과 작은 가게가 줄지어 선 풍경, 오래된 광장을 낀 바르셀로나의 신선한 전통시장, 정박한 작은 배들과 어우러진 시드니의 수변보행길, 현란한 야경과 어울리는 홍콩의 오래된 도시 풍경, 수백 년 전과 똑같은 건축물로 채워진 피렌체 도심, 근대역사와 휴양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싱가포르 도심항구 등. 이곳의 탄생과 존재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우연히 탄생되지 않았음은 공통 사실이다. 그 사실의 중심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도시규제가 자리한다. 엄격하지만 합리적이며 체계화된 도시규제들이 공간질서의 근원을 제공하고, 이에 오래전부터 작동하고 있는 장소가치의 공감이 더해지면서 이곳들은 국제적인 명소가 되었다.

여기 한 가지 핵심 논점이 있다. 개인재산권 손실에 대한 문제다. 이러한 손실은 보통 개발용적률을 축소하는 다운조닝(down zoning)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도시규제에는 개발용적률을 높이는 업조닝(up zoning) 경우도 있다. 업조닝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는 샌프란시스코다. 샌프란시스코는 바다에서 보이는 입체감 있는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낮은 구릉지 위를 도심지역으로 선택하고 용적률을 올렸다. 물론 도시의 맥락과 풍경을 지키기 위해 업조닝을 택하는 경우는 매우 희소하며, 대부분 다운조닝이 선택된다. 의문이 든다. ‘다운조닝 성격의 도시규제는 모두 재산권을 침해하는가?’하는 것이다. ‘규제를 받으면 오히려 경제 가치가 올라갈 수는 없는가?’라는 질문도 뒤따른다.

도시규제로 해당 지역의 차별성과 정체성이 강화되고, 또한 도시규제가 지역경제와 사회문화적 가치 향상의 원동력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다면 도시규제에 대한 반대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입증의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장소·지역마다 편차가 있다는 점이다. 규제로 인한 경제효과의 수혜자가 지금의 내가 아닐 수 있기에 갈등이 발생하고, 이를 설득할 자신도 없기에 시작조차 못 한다. 그런데 외국 선진 도시들은 도시규제를 어떻게 적용하여 해당 지역의 강점을 키우고 또 명소로 가꾸어가고 있을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강력한 실험’이다. 본보기가 되는 시범사례 즉, 규제받을수록 경제 가치가 높아진 실제 사례를 마중물로 확보했다. 처음은 힘들었겠지만 초집중하여 이를 달성한 도시들의 도시규제는 지금도 수월하게 확장되고 있다. 둘째는 ‘체계적인 시민교육’이다. 도시규제와 관련된 인식의 간극을 줄이는 일은 생각 변화, 즉 지역에 대한 애착심의 발로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지역애착심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기에 선진 도시들은 유·소·청년기부터 지역가치에 대한 학습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 지역애착심의 양을 늘려가는 일, 그것이 성공 요인인 것이다. 세 번째는 ‘다양한 인센티브 발굴’이다. 재산권 손실에 대한 보상책을 말한다. 세금 감면이나 수리비 지원 등 직접형도 있지만, 소프트웨어 즉 기술 전승이나 각종 마케팅 지원 그리고 명예심과 자긍심을 높여주는 창의적 인센티브가 중요하게 채택된다.

사실 이러한 세 가지 특징 모두 ‘행정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시민을 설득하고 함께 공감하기 위한 실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래 삶과 연동되는 라이프 스타일이 크게 변하고 인구가 줄어드는 ‘축소 도시(shrinking city)’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미래도시에 대한 우리 선택은 진정으로 지혜로워야 한다. 오해는 풀고 이해는 높여, 지역마다 도시규제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확장되어 가길 기대해 본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많이 본 뉴스RSS

  1. 1자본주의 병폐 지적 ‘필경사 바틀비’ 연극으로
  2. 2일본 톱배우 다케우치 유코 사망
  3. 3최치원…그의 길 위에서 생각한다 <34> 합천 가야산 해인사 들다
  4. 4지방의료원 절반은 흑자…동·서부산의료원 신설 힘실린다
  5. 5[서상균 그림창] 딱이네!
  6. 6힘내라 부울경 소·부·장 <4> ㈜중앙카프링
  7. 7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9> 실향민의 노래 ‘꿈에 본 내 고향’
  8. 8경쟁력 압도적인 거물급 필요…야권 김무성 투입론까지 거론
  9. 9부산 금융센터지수 11계단 대폭 상승
  10. 10부산 서구에도 구립 도서관 생긴다
  1. 1경쟁력 압도적인 거물급 필요…야권 김무성 투입론까지 거론
  2. 2‘산복도로 100원 택시’ 내년 시동
  3. 3‘포스트 심상정’ 김종철·배진교로 좁혀졌다
  4. 4“변화세력 연대” “원도심 비전 구상”…야당 후보군 추석 민심잡기
  5. 5피격 전 문재인-김정은 ‘친서 소통’ 있었다…북한 신속사과 이끈 배경
  6. 6“대통령 보고 47시간 진실 밝혀라”
  7. 7여야 이견…국회 ‘대북결의안’ 채택 불발
  8. 8해상 시신 수색에…북한 “군사분계선 넘지 말라” 이중적 태도
  9. 9북한 "남측, 영해 침범 말라" "시신 수습하면 넘겨줄 방법 생각"
  10. 10靑 "진상 규명 위해 남북 공동조사 요청"
  1. 1 ㈜중앙카프링
  2. 2부산 금융센터지수 11계단 대폭 상승
  3. 3롯데그룹, 사회공헌활동으로 코로나19 극복 앞장
  4. 4“태풍 때 고리·월성원전 가동 중단, 염분으로 인한 전기불꽃 현상 탓”
  5. 5올해 부산서 수도권 이주 1만 명 돌파…75%가 ‘2030’
  6. 6
  7. 7
  8. 8
  9. 9
  10. 10
  1. 1 합천 가야산 해인사 들다
  2. 2지방의료원 절반은 흑자…동·서부산의료원 신설 힘실린다
  3. 3부산 서구에도 구립 도서관 생긴다
  4. 4 ‘반역’을 꿈꾸다
  5. 5김해 봉황동유적지 일대 가야시대 토성 흔적 확인
  6. 6거창 공사중단 모텔 ‘청년주택’ 변신 본격화
  7. 7부산 동구 쪽방촌 정비…공공주택 425채 공급
  8. 8“합천은 최치원이 말년에 은거한 곳…가야산 소릿길 등 이야기 가득”
  9. 9오늘의 날씨- 2020년 9월 28일
  10. 10양산시의회 이상정 부의장, 직무참여 일시정지 풀렸다
  1. 1햇빛이 야속해…롯데, 타구 놓치며 승기 날려
  2. 210년 만에 첫 우승 안송이…10개월 만에 두 번째 정상
  3. 3부산, 파이널라운드 첫 경기 고배…1부 잔류 먹구름
  4. 4가을야구 앞둔 토론토, 에이스 류현진 언제 쓸까
  5. 5발렌시아, 우에스카와 1-1 무승부...‘이강인 교체 출전’
  6. 6 '1골 2도움’ 손흥민 맹활약…토트넘, 유로파리그 PO 진출 성공
  7. 7류현진 7이닝 무실점 완벽투 … 토론토 PS 진출 확정
  8. 8BNK 썸, 코로나19로 지친 팬 위한 뮤직비디오 공개
  9. 9
  10. 10
우리은행
21대 국회 대해부
PK 당선인의 ‘인생 입법’- 김두관·서병수 진심 인터뷰
21대 국회 대해부
PK 당선인의 ‘인생 입법’- 울산 경남 당선인 역점 법안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일몰제가 준 생명 같은 교훈
2020년 지금 우리에겐 취사선택권이 없다
기고 [전체보기]
검경, 상호협력·견제와 균형의 길로 /정의롬
인적자원개발, 한국판 뉴딜의 열쇠 /최희숙
기자수첩 [전체보기]
뭐 먹지? 고민될 땐 ‘탑쓰리’ /박호걸
전재수·최인호, 가덕신공항 정치적 이용 말라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닫힌 사회와 그 친구들
삼각 교수대와 황금 요강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융합 우리를 아름답게 하리라
농악 ‘함께’와 ‘신명’의 미학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주거빈곤 아동을 바라보는 자세 /하송이
구멍 뚫린 정책, 고통은 국민의 몫 /정유선
도청도설 [전체보기]
계몽군주
대답 없는 장관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가을의 시간을 맞으며
이주의 시대와 문학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며느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자갈치시장 ‘백화양곱창’과 ‘불산’
사설 [전체보기]
안전분과 무시 표결, 김해신공항 검증 신뢰성 있나
북 사과했지만 의문 투성이 실종자 총살 진상 밝혀야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정치권으로 확산되는 기본소득 포퓰리즘
청년 기본소득이 ‘가짜 기본소득’인 이유
이수훈 칼럼 [전체보기]
남중국해 갈등과 우리의 대응
기후위기 그리고 그린 뉴딜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인내와 고통으로 탄생한 명작
명작이 된 습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코로나 아이러니
외국인 근로자 문제, 어떻게 해야 하나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당정의 균형발전 엇박자
이낙연·김종인에 주어진 반 년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명반과 곡명에 대한 편견
더위에 지친 당신께 이 곡을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으로 느끼는 자부심
가격이 중요하나요?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인상의 소나무 그림
손재형의 ‘승설암도’
  • 2020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행복한 가족그림 공모전
  • 국제 어린이 경제 아카데미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