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해본다. 남북통일에 관하여 아주 진지하게 고심해본 적이 있는가. 대답이 궁색해진다. 한국전쟁이나 독일군이 등장하는 수많은 전쟁영화를 보면서도 통일과 연관성을 떠올린 적이 거의 없었다. 통일문제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할 단계이다.
통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베를린 장벽이다. 무너진 그 장벽 앞 세계적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1989년 11월 어느 날, 파리에서 라디오를 통해 소식을 접했던 그는 개인 비행기를 소유한 친구에게 연락해 베를린으로 날아가 베를린 장벽의 관문인 ‘체크포인트 챨리’에 도착한다. 미키 마우스 그림과 수많은 낙서로 가득 찬 벽을 배경으로 근처에 있던 경비병의 소박한 의자를 빌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4번 사라방드’를 연주하기에 이른다. 그의 나이 63세.
그의 연주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 자유를 염원했고 억압을 이겨낸 자유로운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이었다. 진정한 예술의 길과 솔제니친을 지지한 신념을 지키고자 고향 소련을 떠나 세계를 떠돌던 로스트로포비치 자신의 슬픔을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우리의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고 임진각이나 판문점에서 열리게 될 콘서트나 오케스트라 공연을 상상해본다.
지난해 부산작가회의 행사에 참여해 임진각 통일전망대를 다녀왔다. 방문 중인 외국인이 생각보다 많아 좀 놀랐다. 아마도 세계 유일 분단국의 분단현장을 보려고 날아온 사람들이라 짐작했다. 이른바 DMZ 투어를 경험했다. 분단 역사를 담은 기념관에서 철조망 사진도 보았다. 통일의 꿈을 담은 갖가지 메모, 녹슨 기차와 기찻길도 설치미술처럼 전시돼 있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어가 떠올랐다. 이산가족 우체통이 마련돼 있었고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이라는 글이 걸려 있는 ‘도라 전망대’를 거쳐 마지막 여정인 ‘도라산역’과 ‘남북출입사무소’를 둘러보았다.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도라산역을 개통하고 전쟁으로 끊어진 경의선을 연결하였습니다”라는 글귀를 한참 바라보았다. 이 모든 염원이 색색깔의 깃발이 되어 북한 하늘에 휘날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2003)’이란 영화가 있다. 아들 알렉스와 어머니 크리스티아네가 나온다. 이들은 공산국가인 동독 체제에 철저히 순응하며 살아왔다. 어머니 크리스티아네는 남편이 서독으로 망명하자 그 충격으로 우울증에 빠졌다가 회복된 후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게 된다. 10년 후 1989년, 베를린 장벽 개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 알렉스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끌려간다. 우연히 이 광경을 본 크리스티아네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져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8개월 뒤 어머니가 깨어나지만, 그 사이 베를린 장벽은 허물어지고 독일은 하나의 국가가 됐다. 알렉스는 열혈 공산주의자인 어머니가 자본주의로 뒤바뀐 세상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여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걱정에 어머니의 눈과 귀를 속이기로 작정한다. 대략 이런 내용인데 통일이 이루어지고 난 뒤 혼란함과 문제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영화였다.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데올로기보다 사람과 사람 간 이해·관용·배려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최근 국제신문은 베를린 장벽 무너짐 30주년을 맞이하여 하태영 교수의 ‘베를린 리포트’를 상·중·하 3회에 걸쳐 보도했다. 독일 통일은 우리 모델은 맞지만, 우리는 독일처럼 전범 부채가 없다. 뒤엉킨 고리를 잘 풀어 현명하게 통일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보수도 진보도 힘을 합해야 한다.
독일에서 배우되, ‘붕괴보다 평화’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멀리 보고 길을 가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도 만만치 않다. 연일 메가톤급 발언을 날리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반격하는 김정은 국방위원장, 새 패권국가로 나선 중국, 극우로 치닫는 일본. 우리끼리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시대에 뒤처지고 미련한 정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국회를 보면 대략 난감, 위험천만이다. 대한민국 국회여! 잠에서 깨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