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밤늦게 숙환으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영원한 퇴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끈 압축 성장의 상징인 그를 통해 정경 유착의 어두운 그림자와 불굴의 도전이라는 기업가 정신이 던지는 의미를 새삼 떠올린다. 대우그룹의 흥망성쇠 역사는 경제 위기에 빠져 허덕이는 이 시대 사람들이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샐러리맨 출신으로 만 30세에 자본금 500만 원과 직원 5명으로 사무실을 차려 사업을 시작한 그의 열정은 남달랐다. 눈부신 경영 성과는 세계 경제계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대우그룹은 창립 30여 년 만에 현대그룹에 이어 자산규모 국내 2위의 재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계열사 41개, 해외법인 396개에서 근무하는 임직원만도 30만 명이 넘었고 1998년 기준 수출액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4%를 차지했다. 게다가 선진국 기업들도 진출을 주저하던 지역에서 거침없이 사업을 벌여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아프리카 오지는 물론 당시 개방을 시작한 옛 공산권 등 세계 곳곳을 누빈 김 전 회장이 집필한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유행어가 됐으며, 그 활약상은 젊은이에게 큰 영감을 줬다.

그러나 지나친 외형 성장에 치중했던 대우그룹의 ‘세계 경영 신화’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라는 외부 충격으로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밀월관계였던 당시 김대중 정부와 위기 극복의 방법론에서 현격한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 발표 과정에서 정부와 갈등을 빚었고, 엄청난 부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우그룹의 성장을 이끌었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은 공격적 차입 경영이 독이 됐던 게다.

대우그룹의 급격한 성장은 산업화시대의 여느 그룹과 마찬가지로 정경 유착 덕을 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도 별 이견이 없다. 세상을 떠난 그의 성공과 실패의 유산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