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사진 대가 선생께 물었다. “선생님, 사진이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젊은 선생들이 나의 외람된 질문에 옆구리를 찔렀다. 나는 개의치 않고 다시 물었다. “선생님은 평생 사진을 하시고 지금 나이 70을 넘기고 계십니다. 그 오랜 동안 터득한 한마디를 듣고 싶습니다.” 선생은 눈빛으로 나를 제재하는 선생들을 물리치고 말했다. “나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 나이에도 사진을 하고 있다.”
일본 유학 시절의 경험담이다. 나는 그 이후 그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내 나이 이제 그 선생님의 나이가 되기까지는 10년이 채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에게 사진이란 모르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평생을 추구해 온 것인 셈이다.
오늘 모 방송국 사진 심사를 다녀왔다. 수백 장 사진 중에 대상을 고르는 데 5시간이 소요되었다. 심사위원들과 의견이 일치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더 많은 시간을 골방에서 보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낙동강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에 들어맞는 작품성과 창작 의지를 보여준 사진에 대상을 주기로 쉽게 합의를 봤다.
거의 심사가 끝나갈 즈음 누군가 입을 열었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수준이 높아 우리가 심사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심사를 받아야 할 형편이야.”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을 받았다. “완성도에서는 우리를 능가하는 사진이 참 많은 것은 사실인데 왜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사진이 없을까요.”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말을 이었다. “사진에 MSG를 너무 뿌려 그런 것 아닐까요? 사진 자체의 밋밋한 맛이 아닌 화려한 맛을 내는 조미료를 듬뿍 뿌려서 그런 것 아닐까요?”라고.
여기서 조미료를 가리키는 MSG는 전문용어로 ‘후보정’이라는 것인데 옛날 같으면 암실 작업을 말한다. 사진 그 자체가 가진 맛과 멋을 내야 하는데 암실을 통해 강조하거나 왜곡해 첫눈에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게 하기 위한 방편을 쓴 것이란 뜻이다.
사진이 사진 자체로 가치를 가질 수는 없을까? 사회 통념이나 심사위원들의 기준을 넘어 한 장의 사진으로 빛날 수는 없을까? 심사위원들과 대화 중에 하게 된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유학 시절의 대가 선생께 한 질문이 떠올랐다. 그때 선생의 답은 모른다 였지만, 지금 나에게 묻는다면 그 답은 무엇일까. 아직도 여전히 그 선생을 따라 “모른다”고 답할 것인가?
세상에는 수많은 질문이 있다. 그 질문 중에는 답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사람 모두가 공동으로 가지는 답도 있지만 개인 개인마다 다 다른 답을 가진 질문도 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도가 무엇입니까? 인생이 무엇입니까? 사진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모든 질문은 각자의 답은 있지만 모두의 답은 없는 셈이다. 그래서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다. 나의 답은 남의 처지와 다르고 모두의 답은 형상화되어 질문이 가리키는 그 자체를 가리킬 수 없는 사구(死句)가 된다. 있기는 있는데 가리키면 사라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하는 질문의 숙명이다.
멀리 파주에서 한 청년이 내 작업실로 찾아왔다. 그는 젊은 날의 나처럼 서슬 시퍼런 질문을 가슴에 품고 왔다. 모두가 답해 주었지만 아무도 답해 주지 못한 질문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 어떤 답도 그의 질문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질문이 너무 커서 모두가 해준 답이 질문 안에 갇혀버렸던 것이다.
청년은 나를 보자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하고 질문이 있어서 왔다고 했다. 내가 그 질문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는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사진이라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의 말이 채 땅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되받았다. “바로 그것이 사진이다.” 청년은 순간 정수리를 맞은 듯 멈칫하며 놀란 눈으로 나를 한참을 보더니 감사하다며 내가 그를 채 잡기도 전에 들어왔던 문을 밀고 나갔다. 사진이란 정녕 무엇입니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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