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책 한 권이 배달돼 왔다. 한 손으로 들기 힘든 묵직한 책이다. 낙동강공동체 김상화(67) 대표가 집필하고 엮은 ‘낙동강 물터 속의 생명과 마음’(빛누리기획)이다. 올컬러 1200쪽, 사진만 1500여 컷이 담겼다. 500권 한정판으로 찍어 도움을 준 유관기관과 전문가 등에게만 ‘기부하는’ 백서란다. 그냥 받기가 미안해 책값(13만 원)을 여쭈었더니, ‘낙동강 사랑값’으로 대체하자고 한다. 순간, ‘낙동강의 마음’이 읽혀 가슴이 저릿했다.
백서에는 낙동강 1300리, 강원도 태백에서 부산까지 거의 모든 하천망이 망라돼 있다. 낙동강에는 크고 작은 지류·지천이 1168개, 소하천이 780개 그리고 중지류(중권역)가 33개다. 이번 백서는 낙동강 전역의 57개 단위하천을 입체적으로 진단·평가했다. 각 지류의 현장지도, 생명자원 관찰도, 5부(자연·사회·인문·수자원·환경) 자원 명세표, 하천건강 관찰 카드 그리고 환경기행까지 담아 낙동강 전체의 흐름과 연계성을 한눈에 살피게끔 했다.
이들 수천 개 지류·지천은 사람으로 치면 핏줄이요 신경망이다. 사실상 전부 연결되어 인과(因果)를 따진다. 워낭소리가 들릴 법한 경북 산골짜기, 지리산 심심산골 작은 지류 하나라도 아프거나 병이 들면, 낙동 큰 어미도 같이 아프다. 1991년 페놀 오염 사태가 가져온 파장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자연의 거대한 순환 고리는 ‘유역공동체’가 절실함을 일깨운다.
백서 원고는 지도를 포함, 모두 육필로 썼다. 기획에서 현장조사, 집필까지 10여년이 걸렸다. 집필 중 김 대표는 피똥을 싸고 각혈을 했다고 한다. 육신이 삭고 기운이 허물어져 병원 신세를 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생일대 마지막 낙동강 백서를 쓴다는 각오로 작업에 임했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읽는 내내 가슴이 졸였다. 수많은 하천의 발원지를 탐사하고 하천망을 진단·분석하려면 자료에 의존하기보다 발품을 팔아야 한다. 백서에는 발품을 팔아 현장과 부대낀 흔적이 선혈처럼 낭자하다. 칠순을 바라보는 김 대표가 풍찬노숙하며 낙동강을 돌아다닐 때, 우린 무얼 하고 있었던가. 세상은 늘 이렇다. 백서 쓰는 사람 따로, 받아보는 사람 따로. 성찰도 반성도 없다.
그동안 낙동강 백서 작업은 부산연구원(부발연)에서 2000년대 몇 차례 자료 중심으로 펴낸 적 있고, 김상화 대표가 1998년 ‘낙동강 생명찾기 백서’(인쇄골), 2004년 ‘낙동강 생명찾기 백서’(물/흐름 2권)를 발간한 바 있다. 이렇게 보면, 낙동강 백서 작업은 김 대표가 개인적으로 줄곧 진행해 온 셈이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긴다. 민족의 대하, 영남권 1300만 주민의 식수원인 낙동강을 백서로 만드는 작업은 응당 국가나 지자체가 맡아야 할 게 아닌가. 환경부와 낙동강유역환경청, 수자원공사, 지자체, 연구단체 등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백서 간행에 도움 좀 줬다고 면피될 사안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낙동강을 어떻게 보고 대접해 왔느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
한 개인의 열정과 집념이 있었기에, 우리 모두는 그나마 낙동강 앞에 머리를 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백서는 우리 시대 낙동강에 바치는 최고의 위로이자 선물이다.
이 백서는, 낙동강이 처한 위기의 현실을 새삼 주시하게 만든다. 낙동강은 지금 거대한 ‘사회 환경병’을 앓고 있다. 흐름이 막혀 동맥경화에 걸린 지 오래고, 수시로 ‘녹조라떼’를 덮어쓴 채 숨쉬기가 힘겹다. 8개 대형 보 처리와 재자연화 문제, 하구 습지 보존 문제, 하굿둑 개방, 대저대교 건설 등 이슈와 과제가 수두룩하다. 대통령까지 다녀간 서낙동강 에코델타시티도 실은 스마트시티라는 이슈에 매몰될 게 아니라, 낙동강 하구 전체의 생태계 틀 속에서 바라봐야 할 사업이다.
백서를 쓴 김 대표는 소박하게 외친다. “낙동강, 이제 우리가 사랑할 차례입니다”고. 20년 전 그는 이 메시지와 함께 10월을 ‘낙동강의 달’로 선포하자고 제안했다. 20년 묵은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내년 초 ‘백서 출판기념회’를 열겠다고 했다. 그땐 달려가 ‘낙동강 사랑가’ 한 곡조 뽑아야겠다.
칼럼니스트·스토리랩 수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