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새해를 타지에서 기념하기 위해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 점심때가 돼, 숙소 주변에 있는 현지 식당을 들렀다. 이 식당은 상하이 한복판에 있어 많은 여행객이 들르는 곳이었다.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살펴보니 읽을 수 있는 글이 없었다. 모든 메뉴 설명이 중국어였고, 영어로 된 설명조차 없었다. 한국어로 번역되는 애플리케이션을 쓰기에는 회전율이 좋은 식당이었기에 무리였다. 결국 불친절한 메뉴판 탓에, 이름 모를 음식들만 잔뜩 먹고 더부룩하게 식당을 나왔다.
그 식당에서 필자는 메뉴판을 못 읽었기에, 문맹이었거나 시각장애인이나 다름없었다. 다시 생각해봤다. 한국 식당에서 시각장애인은 스스로 메뉴를 고를 수 있을까. 음성 안내나 점자가 없는 메뉴판만 있다면, 곁에 지인이 없다면, 음식을 시킬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각장애인이 식당에서 불편과 무안을 느꼈을까. 다수가 누리는 당연함이 누군가에겐 차별이 돼 비수로 돌아갈 수 있다.
‘나’이므로 자연스럽게 누리는 권리가 있다. ‘나’여서 인정받고 차별받지 않았기에, 지금의 명예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권을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지닌 권리는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일까. 이러한 무지에서 비롯된 차별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예로, 한국에 이주민 비율이 높아짐과 동시에 이주민을 향한 비난과 원망도 높아졌다. 이 사례에서 특권층은 한국인이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주민을 배척하고 원망하며, 탈한국하도록 만든다. 이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인이니까 자국에서 당연히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다른 인종이 혐오 대상이 되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그렇다면 기사로 현재를 말하는 매체인 국제신문도 어떤 이에게 차별주의자일까.
지난해 11월 15일부터 올해까지 1년을 기준으로 하여, 온라인 국제신문에서 특정 단어를 검색해봤다. 첫 번째로 ‘여직원’을 검색하니 34건의 기사가 나왔다. 그중 최신 기사인 ‘돼지열병·농사일·AI 방역 동원…김해 공무원들 ‘삼중고’ 몸살’에서 직원을 언급할 때 여자라고 성별을 따로 지칭했다. 김해시 공무원의 업무가 과도하게 많아지면서 새벽 근무에 여직원도 제외가 없다는 문장과 취재원 멘트를 인용할 때 여직원 단어가 사용됐다. 이 기사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관련 근무로 고충을 겪는 김해시 공무원의 근무 현장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업무의 고충을 강조할 때, 직원 성별을 지칭할 필요는 없다. 이외에도 성추행과 성범죄를 다룬 기사에서도 여직원이라는 표기가 많았으며 ‘남녀’ 단어를 적은 기사도 580건 발견됐다.
기사에서 쓰는 단어와 대상을 규정짓는 프레임을 통해 차별적 표현이 남용될 수 있다. 이를 타파하고자 많은 언론사가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는 성별 표기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 표기하는 관행을 버리고, 필요할 때는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남성이 표준임을 보여주는 지금까지 표기 관행이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것임을 인정했다. 일간지 ‘한겨레’는 올해 초 디지털팀 산하에 젠더팀을 개편했다. 젠더 이슈를 다루는 콘텐츠를 제작하겠다는 포부로 유튜브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은 여러 사실 중 본인 생각에 들어맞는 사실을 선별한다. 이는 곧 본인의 지식체계에 들어가 자명한 진실이 된다. 이런 과정에서 언론은 많은 영향을 미친다. 언론이 관행처럼 사용해 온 표현이 누적되고 남용되면 누군가에겐 진실이 된다. 이는 어떤 이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세상을 바라보는 창에 편견을 만드는 행위일 수 있다. 필자는 성차별적 보도 사례를 언급했지만, 실제로 인종 지역 등 귀속 지위 외에도 많은 요인에 따른 편견이 존재한다. 글로 세상을 보여주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언론에 있듯, 앞으로 국제신문도 지역지로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철저한 자기반성과 점검이 필요하다.
부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