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는 중국이다. 대자보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인 1950년대 중국 전역에서 유행했던 대중선전용 벽보였다.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벽에 붙인 큰 글자란 뜻이다. 조직 단체 내부에 돌리는 성명서 같은 소자보와 구별해 표현한 말이다. 대자보는 그렇게 격동의 중국 현대사와 함께 탄생했다. 이후 학생운동권뿐만 아니라 정치 문제를 대중에게 선전 선동하는 매체로 세계적으로 보편화됐다.
특히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홍위병 등 조반파(造反派)의 중요한 무기로 사용됐다. 조반파는 류사오치 덩샤오핑 등 주자파(走資派)가 중국공산당의 각 기관과 기관지 등 간행물을 장악하자, 이를 공격하는 데 대자보를 활용했다. 대표적인 게 1966년 11월 8일 베이징대의 홍위병이 써 붙인 ‘류사오치는 자산계급 노선을 밟는 권력파의 제1호이고, 덩샤오핑은 제2호이다’는 대자보다. 이처럼 대자보는 탄생 자체부터 체제 저항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
이즈음 대자보는 일본 대학가를 휩쓸었던 좌익 학생운동권에 전해져 크게 유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화 운동에 큰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초중반 군사정권의 언론 통제가 극심하던 시절 대학가의 반독재 여론 형성에 한몫한 매체였다. 그 시절 대자보는 대학생에게 시대정신을 강제하는 명령과 다름없었다. 이런 대자보의 역할과 영향력은 언론 자유와 민주화, 사회주의 몰락으로 급속히 축소됐다. 하지만 아직도 대학 동아리 등이 자치 활동을 알리는 장으로는 대자보를 많이 활용한다. 여론 형성의 광장이란 의미의 대자보 역할은 여전한 것이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훼손되는 일이 벌어져 논란이다. 중국 유학생이 훼손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물리적 충돌까지 우려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중국이면 그냥 싫다는 식의 ‘반중(反中)’ 감정으로 이어지는 형국이어서 염려스럽다. 일부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마라탕을 먹으면 그 돈이 중국인에게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제 불매해야 하나 싶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래서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막는 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비판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지, 중국과 관련한 것도 싫다는 식의 감정적인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위병식의 대응은 곤란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홍콩 문제를 식민주의 청산이자 일국양제의 문제로 생각한다”는 지적(서울대 정근식 사회학과 교수)도 새겨들을 만하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