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집권 후반기가 시작됐다. 어떤 사람은 “벌써 절반이 지나갔나”, 반대쪽에서는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나”고 말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사를 통해 “저는 역사와 국민 앞에 두렵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소명을 다할 것임을 천명한다. 국민 여러분의 자랑으로 남겠다”고 약속하면서 야심차게 임기를 시작했다.

임기 전환점을 막 돌아선 지금, 절반이 지난 시간에 대한 느낌과 마찬가지로 ‘자랑’으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평가 역시 엇갈린다. 개혁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주장과, 불과 2년 반 만에 나라를 망쳐놓았다는 극과 극의 평가가 상존한다.

호불호에 따른 평가는 제쳐두고, 문재인 정권 후반기를 맞은 대한민국이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에 직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위기’란 말이 듣기 거북하면 ‘도전’이라고 해도 좋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로 주저앉을 판이고, 세금으로 만든 노인 일자리에 비례해 비정규직은 급증하고 있다. 북한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시도 때도 없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이미 뉴스도 아닐 정도로 만성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청와대 안보실장은 “큰 위협이 아니다”고 말한다.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혈맹’이던 한미 관계는 ‘거래처 관계’로 추락할 조짐까지 보인다. 한중 관계는 여전히 ‘사드 파동’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고, 러시아는 대한민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전투기를 띄워 우리나라 영공을 유린하고 있다. 집권 초반부터 시작된 ‘적폐 청산’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심각한 국민 분열로 이어졌고, 뭘 해도 상상을 뛰어넘는 ‘초법적 가족’의 출현으로 보통사람들의 가슴은 찢어졌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40% 중반대를 넘나들고 있다. 대통령 임기 절반이 지난 시점에 40%를 넘는 지지율을 보인 대통령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뿐 아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대한 지지 역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앞서고 있다. 한국당이 제대로 된 야당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레도 두 바퀴가 모두 튼튼해야 사고 없이 잘 굴러갈 수 있듯이, 국가도 마찬가지다. 여야가 제 역할을 해야만 위기국면을 만들지 않고, 위기에 봉착하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 지금처럼 집권당 대표가 수십 년 장기집권을 공언할 정도로 야당이 무시당하는 나라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하지만 제1 야당은 총체적 난맥상만 드러낸 채 국민 열망을 담아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당 대표부터 초선의원까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빼고”라는 분위기다. ‘보수의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우선 황교안 대표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앞장서서 자신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 패배 시 보수진영이나 한국당은 물론이고 황 대표 자신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데, 총선 이후부터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당권이건 공천권이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올인해야 하는데 대권 욕심에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 당 안팎에서는 황교안 리더십에 대한 온갖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황 대표는 애써 외면하는 모양새다.

‘용퇴’ 압박을 받고 있는 중진들도 마찬가지다. “이기는 선거가 우선”이라면서 버티기로 일관한다. 당이 이 지경에 처하게 된 책임 있는 의원들조차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3선이면 12년, 4선이면 16년이다. 그 세월 동안 이루지 못했던 일이 있다면 앞으로도 달성하지 못할 일이다. 왜 꼭 자기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할 수 없다면 그만 자리를 비워줘도 좋을 듯하다. 그게 ‘품위 있는 퇴장’이다.

중진의원들에게 용퇴를 촉구한 초·재선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젊다고, 당선 횟수가 적다고 면죄부가 부여된 것은 아니다. 초·재선 의원 중에도 4년 또는 8년간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의원이 부지기수다. 중진의원들의 용퇴를 촉구하면서 자신들은 희생하지 않겠다는 초선들의 말에서 어떤 진정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년 총선 승패를 가늠할 키워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인적 쇄신’이다.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결국 현역 의원들이 자리를 비켜줘야 공간이 마련된다. 결론은 ‘자기희생’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떠나고 난 다음의 ‘빈자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국민이 알아서 채워줄 것이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을 넘겨주고, 지방선거에서 완패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한국당에서 어떤 미래를 볼 수 있을까. 민주당은 좋겠다. 야당 복(福)이 많아서.

서울본부장·서울정치부장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