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대사 연구자인 김현구 교수는 ‘일본이야기’라는 책에서 일본은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일본의 속성은 제국주의 정신의 근원이고, 침략주의 근성의 뿌리이다. 강한 자에게 약하다는 것은 강한 자를 이기기 위해서 끝없이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병법서인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에도 이러한 불패의 정신이 나타나 있다. 이 병법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 명의 적을 이길 수 있으면 세상 사람 모두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전략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제국주의 논리이다. 상대방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자신이 당한다는 이 오만한 강자의 논리는 일본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집단 이념이기도 하다. 이 강자의 논리는 일본이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을 때 잘 드러났다. 일본은 전쟁 중에 수많은 학살과 만행을 저지르고도 반성을 하지 않는다. 일본은 약자를 철저히 짓밟는 비인간적 행위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경리는 ‘일본산고(日本散考)’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인에게는 예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약한 자를 가엾게 생각하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정서다. 그러나 약자에게 강한 일본인의 속성은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박경리는 ‘일본인에게 예를 차리지 말라’고 충고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는 해방이 되고 난 뒤 조선을 떠나면서 “지금은 조선을 떠나지만 앞으로 조선은 일본이 남긴 잔재 속에서 100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100년 뒤 일본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무시무시한 발언이 사실인지 풍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일본인이 제국주의 근성을 버리지 않는 한, 이 말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지금 우리가 일본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최근 일본이 보인 경제보복 조치는 과거 우리 역사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관계를 떠오르게 한다. 1592년 일본은 조선 국내 정치의 혼란을 틈타서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조선을 통해서 명나라로 나아가려고 했다. 대한제국 시절 일본은 또다시 침략주의 근성을 드러냈다. 일본은 1899년 경인선 부설로부터 1904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 경원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모든 철도부설권을 따낸 뒤 조선을 경제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들이 만든 철도를 이용해서 조선의 물자를 일본으로 수송하고, 대륙 침략을 위한 군수 물자로 만드는 데 활용했다. 일본은 철도를 건설해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 허무맹랑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침략주의를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일본은 경제 침략과 동시에 일진회를 조직해서 내부의 동조자를 만들고, 이들을 중심으로 친일 세력을 양성해서 스스로 우리 민족을 지배하게 했다. 이들이 조직한 친일 세력들은 후대까지 이어지면서 기득권을 형세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다시 돌아온다는 아베 노부유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내리고 있는 일제 잔재가 그것을 말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처가 내려진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내부의 정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또다시 국론이 분열되고 국회는 제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편 가르기 싸움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국내의 사정을 일본 정부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나라가 일본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일본보다 강한 나라가 되는 길뿐이다. 강한 자에게는 약한 일본인에게 굳이 예를 갖출 필요가 없다는 박경리 선생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때이다. 일본의 아베 정권이 극우의 길로 나아가면서 침략의 야욕을 꿈꾸고 있는 한 우리나라는 그들의 행보에 맞서는 강한 나라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사회학자 루스 베니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은 언제든지 호전적인 열정을 불태울 나라라고 했다. 상대방을 제압해야만 살아남는다고 생각하는 일본을 이기는 방법은 그들과 싸움에서 이기는 길뿐이다.
명나라 말기의 학자 육소형은 ‘취고당검소’에서 “명성을 좇는 자는 조정에 취하고, 이익을 좇는 자는 속된 세상사에 취하고, 호사(豪奢)하는 자는 호사스럽게 방종한 생활에 취한다. 모두 각성하지 못한 이 세상에 어떤 청량제를 먹여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라고 했다. 3·1운동 100주년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우리는 항일이라는 청량제를 먹어야 할 것이다. 일본이 제국주의 근성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 민족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은 항일의 길뿐이라는 다시 한번 깨달았으면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