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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특별한 갈치구이 한 토막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13 19:41:25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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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이었다. 알고 지내던 음식점 주인장에게서 “기막힌 갈치가 들어왔으니 얼른 오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기막힌 갈치’가 아니라 ‘얼른’이라는 부사에 꽂혔다. 아무리 좋은 생선도 때를 놓치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부리나케 달려갔다.

도톰하고 노릇한 갈치구이. 국제신문 DB
1kg에 육박하는 큼지막한 제주도 성산포산 생갈치 한 마리를 들고 온 주인장은 그 찬란한 은빛을 자랑만 하고 다시 거둬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 갈치 한 토막을 구워 내왔다. 야박하다고? 천만의 말씀. 나는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와 통 큰 배포에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갈치는 연중 잡히지만, 10~12월 잡은 가을 갈치 맛이 가장 뛰어나다. 수온이 내려가면 월동 준비로 먹이를 충분히 섭취해 살이 도톰해지고 기름이 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을에 제주도 성산포 근해에서 낚시로 잡은 은갈치를 최상품으로 친다.

최상품에도 등급이 있다. 가장 대중적인 제주 은갈치는 10kg 한 박스에 33마리가 들어간다. 마리당 중량이 300g 정도 되고 시중에서 흔히 판매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10kg 한 박스에 11~13마리 든 것이 있다. 이 정도 크기의 갈치는 특대형으로 분류되며 마리당 800g 이상이다. 특대형 갈치는 제주도에서 어획되는 은갈치 중 3%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어획량에 따라 마리당 3만~5만 원 가격으로 판매된다. 명절 선물용으로나 어울리지 저녁 밥상에 올릴 엄두는 나지 않는 물건이다.

주인장은 이 계절에 가장 맛있는 제주 은갈치를, 그것도 고작 3%밖에 잡히지 않는 특대형을,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부위인 뱃살이 포함된 한 뼘 정도만 구워 대접한 것이다. 주인장은 나를 시험에 들게 했고 나는 몇 마디 감탄사로 시험을 무난히 통과했다.

노르스름하게 굽힌 표면을 젓가락으로 살포시 누르니 기름이 자글자글했다. 갈치 가시 발라내는 순서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통통한 가운데 살점을 큼지막하게 떼어내 입으로 가져갔다. 짭조름한 살점이 장독 뚜껑에 내려앉은 싸락눈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무심하면서도 마음을 당기는 맛. 그것으로 끝인가 싶은 순간, 고소한 기름이 긴 여운을 남겼다. 갈치 한 토막을 먹는 내내 어렸을 적 할머니가 밥상 옆에 앉아 갈치 가시를 발라주던 추억에 빠졌던 것 같다.
원재훈 작가의 음식 에세이집 ‘내 인생의 밥상’에서는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에게 원고 청탁을 하러 가서 얻어먹은 밥 한 끼를 소개한다. 평생 검소하게 살다 가신 권정생 선생은 멀리서 찾아온 손님에게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를 내어주셨다. 특별한 대접이라고는 간장에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주시면서 미소를 지은 것이 전부. 작가는 그때 비로소 쌀밥과 간장의 절묘한 맛을 체험했노라 회상한다.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것은 최고가 아닌 최선이다. 자기 형편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마음은 충분히 전달된다. 내게는 갈치 한 토막이 그랬고 원재훈 작가에게는 간장 한 종지가 그랬다. 갈치구이를 먹을 때마다 의기양양하던 그 주인장의 표정이 떠오른다.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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