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어긋나야 삶이다 /황경민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12 19:35:22
  •  |  본지 2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단지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한 극단에서 작가에게 희곡을 의뢰한다. 한 번도 희곡을 써보지 않았으면, 책임감과 작가윤리가 있는 이라면 응당 정중히 거절해야 옳았을 터인데 사사로운 욕심과 괜한 인정에 사로잡힌 그는 청탁을 수락하고 만다. 극단 대표와 친분이 있고, 극단 사정을 좀 안다는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어긋남이다.

극단에서는 소재와 주제를 정해 희곡을 써달라고 요구했으나, 막상 작가는 극단에서 기획한 광범위한 소재와 주제로는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다. 작가는 소재를 좁히고 주제를 바꿔서 쓰기로 한다. 두 번째 어긋남이다. 극단은 공연 날짜를 잡고 작품 마감 기한을 작가에게 통보했으나 희곡 쓰기는 지지부진이다. 극단 대표는 더 기다릴 수 없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감감무소식의 작가에게 전화를 건다. 작가는 빈손으로 극단 대표를 만난다. 세 번째 어긋남이다.

작가는 저간의 사정을 설명한 뒤 따로 노는 이야기를 다 쓸 게 아니라 한 이야기에 집중해야겠다고 우기고, 칼자루를 놓친 극단 대표는 작가의 제안을 수락하고 마감시한을 늦춘다. 발등에 불 떨어진 작가는 부랴부랴 희곡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데 희곡은 극단 사정(제작비용, 배우 확보, 스태프 구하기 등등)은 전혀 개의치 않는 형식과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네 번째 어긋남이다.

우여곡절 끝에 희곡을 완성한 작가와 연출가가 만난다. 많은 등장인물은 배우들이 돌려막기로 하고, 열한 곡 노래는 편곡자에게 맡겨 편곡하기로 하고, 뮤지컬 배우들도 아닌 배우들이 소화하기 힘든 노래는 악사가 대신하기로 하고, 불쑥 삽입되는 영상 장면은 독립영화감독에게 의뢰하고, 음악 장비는 빌리기로 한다. 결국 제작비는 초과되고, 일정은 급박해지고 만다. 다섯 번째 어긋남이다.

지역에서 배우를 다 구할 수 없어서 다른 지역까지 수소문해 배우를 캐스팅했으나 배우들 이력과 연차는 다양하다. A가 시간이 되는 날은 B가 알바를 가야 되고, B가 시간이 되는 날은 C의 시아버지 생신이고, C가 시간이 되는 날은 D에게 다른 공연 일정이 있고, D가 시간이 되는 날은 E의 아이들이 아프다. 온전히 다 모여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쥐꼬리만큼밖에 줄 수 없는 출연료 탓에 그들의 형편과 호구지책을 탓할 수도 없다. 그래도 모여서 연극을 한다. 여섯 번째 어긋남이다.

드디어 모여서 연습을 해보지만 각기 다른 이력과 연차를 가진 배우들의 합은 쉽게 딱딱 맞지 않는다. 누군 빠르고, 누군 너무 바쁘며, 누군 서서히 발동이 걸리고, 누군 노래가 부족하고, 누군 집중력이 떨어지고, 누군 마당극 체질이고, 누군 리액션이 늦다. 이렇게 가다가는 딱 망하기 좋다. 일곱 번째 어긋남이다.

노래와 함께 군무와 퍼포먼스가 들어가기에 안무가를 소개받았으나 안무가는 대본을 가져간 다음 날 작품 성격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무를 포기한다. 다른 안무가를 찾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경험이 많은 배우가 안무를 맡는다. 여덟 번째 어긋남이다.

편곡하기로 했으나 작업 시간과 비용이 또 발목을 잡는다. 결국 노래를 작곡한 사람이 악사로 참여해서 기타도 치고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음악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퍼커션과 베이스가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 역시 비용이 만만찮아 건반 하나만 추가해서 음악 반주를 맡기기로 한다. 아홉 번째 어긋남이다. 이렇게 연극이 끝날 때까지 어긋남은 계속된다.
재작년에 이런 사단을 겪었으면 연극에서 손을 떼야 할 터인데 또 꾐에 빠져 세 번째 연극을 올린다. 어긋남이 인생이고, 어긋남이 연극이고, 어쩌면 어긋남 자체가 삶의 목적일지도 모른다. 딱딱 맞아 들어가는 생, 조화로운 삶, 그런 무대, 그런 세상은 없다. 황홀한 도취, 빛나는 환희는 늘 어긋남을 거친 뒤에야 도래한다. 삐걱거리고 어긋나고 비틀거리는 친구여, 예수도 공자도 석가도 어긋남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 어긋남을 살아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작가·헤세이티 대표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 지병으로 별세
  2. 2“LG사이언스홀 폐관땐 제품 불매 운동하겠다”
  3. 3유재수 감싸던 오거돈·市 인사라인 결국 고발당해
  4. 4국토종합계획에 ‘김해신공항’ 일방 명시
  5. 5말 바꾸는 송병기, 청와대와 진실공방
  6. 6‘유재수 파문’ 부산 여권 권력지도 바뀐다
  7. 7어린이집 ‘흙식판’, 구·군 지원 받아도 하루 밥값 2000원
  8. 8UFC 부산 빅 이벤트 ‘정찬성 대 오르테가’ 무산
  9. 9지방선거 부산 야당 후보 사정, ‘엘시티 게이트’가 막았다?
  10. 10부산 경제부시장에 여당인사? 내부 승진?
  1. 1문재인 대통령, ‘판사출신 5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 내정
  2. 2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나경원 불신임 사흘 만, 후보만 4명
  3. 3[2보] 추미애 “사법개혁·검찰개혁은 시대적 요구…최선 다해 국민 요구에 부응”
  4. 4[1보] ‘법무부장관 내정’ 추미애 “검찰개혁은 시대적 요구…최선 다해 국민 요구에 부응”
  5. 5‘추다르크’ 기용 더 세진 검찰 개혁 승부수
  6. 6‘유재수 파문’ 부산 여권 권력지도 바뀐다
  7. 7지방선거 부산 야당 후보 사정, ‘엘시티 게이트’가 막았다?
  8. 8[뭐라노]52일 만에 '추미애' 카드 꺼내든 靑
  9. 9유재수 감싸던 오거돈·市 인사라인 결국 고발당해
  10. 10“포털의 횡포, 기자100명 지역신문보다 5명 인터넷매체 우대”
  1. 1전 세계 북극산업 협력, 부산서 머리 맞대
  2. 2동부산 이케아 내년 2월13일 오픈 확정
  3. 3어업용 면세유 부정수급 빅데이터로 뿌리 뽑는다
  4. 4한진중공업 건설 실적 개선…3분기 누적 영업익 260억
  5. 5 이마트 연말 먹거리 풍성한 할인 행사
  6. 6실적 부진 롯데쇼핑 끊임없는 이커머스 인수설
  7. 7부산 기업의 나전칠기 볼펜, 한·아세안회의 누볐다
  8. 8美中 고래싸움에 부산 제조업 반사이익
  9. 9“DLF 손실 최대 80% 배상” 금감원 결정 역대최고 수준
  10. 10금융·증시 동향
  1. 1해군 부사관 부대내에서 음주운전 하다 바다에 추락
  2. 2김희영 씨·혼외자식이 쏘아올린 작은 공… 노소영 ‘1조3800억’ 상당 주식 얻나
  3. 3집행유예 뜻… ‘강지환 집행유예 기간 3년 동안 문제 없으면 복역 면한다’
  4. 4부산 해운대구 한 아파트서 불…“촛불에서 옮겨 붙은 듯”
  5. 5성남시의원 ‘내연녀 폭행 협박 혐의’ 결국 탈당 사퇴
  6. 62020 수능 만점자 송영준 군 공부비법은?…”레벨업하는 느낌으로 모든 과목을 접근하는 것이 중요”
  7. 7거제 도로 달리던 택시서 불, 승객 1명 숨져
  8. 8부산 남구 주민과 함께하는 ‘캐니언파크’ 무료관람
  9. 9[오늘날씨] 서울 낮에도 영하 2도 “체감온도 더 낮을 것”
  10. 10남구 대연6동 청년회, 집수리 봉사활동 앞장서
  1. 1베트남 태국 축국 중계 채널 및 현재 스코어는?
  2. 2베트남 태국 축구 후반 2대2 무승부 경기 종료 조1위 4강 진출
  3. 3‘베트남-태국’ 진검승부... 박항서 감독, 자존심 걸린 축구 경기
  4. 4[EPL] ‘손흥민 침묵’ 토트넘, 맨유에 1대 2 … 무리뉴 체제 첫 패배
  5. 5오르테가 정찬성 맞대결 무산 “부상 출전 불가”
  6. 6무리뉴, 맨유전 앞둔 심경고백...“지금은 토트넘 감독이고, 이젠 맨유를 상대하는 입장”
  7. 7토트넘 전 ‘하드캐리’한 맨유 래시포드... 드러난 토트넘 수비진 약점
  8. 8오르테가 정찬성과 맞대결 “페더급 타이틀 도전권 노린다”
  9. 9UFC 부산 빅 이벤트 ‘정찬성 대 오르테가’ 무산
  10. 10친정에 복수 꿈꾸던 모리뉴, 래시퍼드에 당했다
국제신문-KLJC 공동 인터뷰
강필구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장 "진정한 지방자치 위해 정당공천제 폐지돼야"
국제신문-KLJC 공동 인터뷰
신원철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장 “시도의회 인사권독립과 전문인력 도입 절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부산의 원도심, ‘문화도시’와 어울리지 않는가
감동스러운 도시건축을 만나고 싶다
기고 [전체보기]
해양 쓰레기 문제에 대처하는 자세 /정연송
부산은 한·아세안 문화교류 플랫폼 /우경하
기자수첩 [전체보기]
외국인에 농락당한 부산 안전 /김영록
부산영상위 수장 첫 공모, 영상산업 이끌 적격자 뽑아야 /민경진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소프트 에듀케이션’ 대안 교육은 꿈일까
‘솔로몬 심판’과 오늘 우리의 송사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사랑방 음악, 더 풍성해지길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피리와 하프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文 정부, 욕하면서 닮아버렸나 /김태경
한국 출판의 새 성장동력 /정홍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로켓맨
해성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내심(內心)의 소리 듣는 시간
中 ‘문학 한류’ 이끄는 정지용의 울림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짬뽕은 역시 빨간 짬뽕
특별한 갈치구이 한 토막
사설 [전체보기]
선거개입 의혹 더욱 커진 ‘김기현 첩보’ 제보 과정
국제관광도시 지정 초읽기…지역 역량 쏟아부어야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지속 가능한 노인 돌봄, 지역사회도 나서라
정의를 갉아먹는 ‘합법적 불공정’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위대한 예술가, 젠틸레스키
인생 2막에 이룬 성공
이홍 칼럼 [전체보기]
기생충
정신 줄 놓지 말고 다시 도전하자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황교안 단식이 남긴 것
‘니가 가라, 험지’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겨울나무
가을! 그 오랜 기억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역사 속의 와인 스타일
와인 패러독스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조선 시대 만다라 문양 민화
호생관 최북의 ‘지두해도(指頭蟹圖)’
  • 사하관관사진공모전
  • 충효예글짓기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