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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행복한 중년, 합천 가는 길 /이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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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11-10 20:14:34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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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 창작실이 있는 곳으로 가는 마음은 언제나 들뜨고 설렌다. 집이 있는 산청 신안면에서 문대와 생비량면을 거쳐 진주, 합천대로를 따라 사십여 분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합천 율곡면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여기부터 차도 별도 안 다니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시작된다.

울긋불긋 가로수가 줄지어 있어, 장거리 운전임에도 전혀 피곤하지 않고 깊어가는 가을 분위기에 콧노래가 나온다. 율곡 농협 지나 조금만 가면 적중·초계로 가는 직진 길이 있고, 왼쪽으로 목적지인 덕곡 학리(鶴里) 가는 길이 나온다. 여기서도 갈 길은 멀지만, 진정으로 가을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곳부터 율곡 지나 덕곡고개까지 늘어선 가로수는 온통 샛노란 단풍나무다. 황강 큰 물줄기에서 약간 비켜났지만, 나름대로 그 이름 그대로 작은 샛강이 있어, 가을 나무는 그 물을 흡수하여 화려한 단풍을 만들어냈나 싶다. 이 가로수 길을 통과할 때마다 나는 몽환적 분위기와 풍경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필자가 머무는 창작실에는 소설가 한 명과 웹툰 작가 한 명, 나 이렇게 셋이 있다. 작가 1인당 숙소, 창작실, 창작지원금, 자문위원 매칭 등 다양한 지원을 하는 이곳은 일상에 찌들어 글이 써지지 않는 작가, 아내 잔소리와 감시를 피해 자유를 누리려는 작가, 그도 아니면 수행하는 스님처럼 창작으로 자신을 불사르는 길이 득도라 여기는 작가에겐 꽤 유용하다. 필자는 두 번째 이유가 주지만, 다른 두 명은 이 시대 예술가답게 투철한 사명감과 열정으로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린다.

작가에게 창작실이나 작가의 방이 있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이다. 필자도 처음 시골에 들어와 집을 지었을 때 본인의 방(작업실)이 따로 없었다. 그건 실세이던 아내가 방 배정을 할 때, 시골에서 쓸데없는 공간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강한 의지와 제법 합리적인 주장 때문이었다. 그때 “이 집은 내 명예퇴직금으로 투입한 지분이 팔십 프로인데 왜 작업실을 배정 안 해주느냐”고 나는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중간에 직장을 그만둔 나의 실정(失政)이 명백하고 추후 생활비 부담률에서 아내와 비교하면 삼십 프로 이하가 확실하여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지금은 반쯤). 그나마 집이 복층 구조라 다락방이 있어 그곳을 작업실로 택했지만, 합천 창작실에 비교하면 여러모로 턱없이 불량하다.

창작실 이야기로 서두를 길게 끈 것 같아 이제 산골에 사는 중년인, 필자의 행복에 관해 몇 자 써야겠다. 합천으로 가는 여정이 기쁜 것과 마찬가지로 산청 집 또한 혼자만의 시간이 요즘은 참 즐겁다. 아내와 딸이 일터와 학교에 가고 나면, 그때부터 오롯이 나의 시간이 된다. 아침저녁으로 꽤 쌀쌀하지만, 해 뜬 뒤 일어나기에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햇볕 쬐고 청정한 공기를 머금은 바람을 맞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행복감이 밀려든다. 그런 후 오늘 글 쓸 분량을 정하고 아침 식사 뒤 집 청소와 설거지, 빨래 개기를 하고 나서 책상에 앉는다.

이때부터 몇 시간은 온전히 창작에 모든 힘을 쏟는다. 이 시간이 가장 집중이 잘 돼 일의 효율성이 높다. 이후 점심을 먹고 집 근처를 산책하며 지천으로 깔린 밤과 감을 망설임 없이 따서 먹고, 잘 익은 몇 개는 딸에게 주려 가져온다. 오후에 또 책상에 앉아 원고, 기사 등 돈이 되는 글을 쓰는 한편, 간간이 마당에 나가 가을바람을 맞는다. 그러면서 아직 자기 의지와 별도로 도시에서 밥벌이해야 하는 친구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며 혼자 빙긋이 웃는다(그는 8년째 밤마다 “그만두어야 하는데” 하며 술에 취해 전화한다). 아내와 딸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불을 때고 저녁준비를 하는데, 그때 함께 귀촌한 작가 등이 술 먹자고 전화해오면, 만사 제쳐두고 기쁜 마음으로 읍내로 향한다.

이 정도면 행복한 중년이 아닐까 싶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이 모든 행복은 합천, 창작실에 원천을 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내의 질책과 비난을 피해 일주일에 사나흘 머물 곳이 있었기 때문인데, 문제는 입주작가 활동이 이번 달로 끝나는 거다. 그리 생각하니 그곳, 물심양면 도와주고 가끔 몰래 술도 사주던 합천 덕곡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직원들이 새삼 고마워지면서, 이곳을 나오면 읍내에 따로 작업실을 하나 만들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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