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22일 밤, 한인 무역회사에 다니며 선교활동을 병행하던 부산 청년 김선일 씨가 이라크 현지 무장단체에 납치된 지 한 달 가까이 됐을 무렵이다. 김 씨는 그때까지 생사가 불분명했다. 동구 범일동 자택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외교부 직원이라고 했다. “아드님이 살아 있답니다.” 부모는 잠시 미소를 되찾았다. 하지만 이 전화는 거짓이었다. 바로 다음 날 바그다드 근교에서 아들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람 목숨을 건 누군가의 장난 혹은 경솔함 때문에 가족은 더 무너졌다. 비통과 엄숙이 지배해야 마땅한 부산의료원 빈소에도 괴담과 유언비어가 넘쳤다. 어떤 목회자는 “이슬람국가인 이라크는 기독교 선교가 불가능하다.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기자들 앞에서 떠들었다. “인터넷에 떠돌던 참수영상을 정부가 삭제했다”거나 “조의금으로 수십억을 챙겼다”는 루머까지 유족의 가슴을 후벼팠다.
광우병 사태, 천안함 폭침, 세월호 참사 때는 결국 거짓으로 밝혀진 가짜뉴스가 나라를 더 혼란에 빠트렸다. 이번 조국 사태 때도 마찬가지다. 진영 논리에 매몰돼 진짜뉴스도 가짜라고 매도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상당수는 ‘진짜’ 가짜뉴스였다. 조 전 법무부 장관의 장녀 입시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인터넷을 급속히 달군 건 “딸이 빨간색 포르셰를 몰고 다닌다”는 소문이었다. 사람들은 조국 일가의 이중성을 비난하며 흥분했다. 하지만 이것이 가짜뉴스임은 곧 밝혀졌다. “검찰이 여자들만 있는 집에 들어가 짜장면을 먹으며 11시간이나 압수수색을 벌였다”던 여당 인사들과 총리의 발언에 사람들은 또 분개했다. 하지만 이 말도 가짜였다. ‘여자들만 있었다’거나 ‘짜장면’은 모두 거짓이고 ‘11시간 압수수색’도 상당 부분 해명이 이뤄졌다. 우리가 듣는 얘기는 대부분 간단한 확인 절차만으로 진위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
스웨덴 메트로 신문사에서 가짜뉴스의 확산력을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정부가 무슬림 이민자들의 반대를 의식해 크리스마스 전구 장식을 금지할 계획이다’는 내용의 가짜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 이 영상의 페이스북 공유 횟수는 무려 14만 번, 댓글은 4만3000개나 달렸다.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사이넌 아랄 연구팀이 작년 3월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2006~2017년 300만 명의 트위터 사용자가 공유한 12만6000개의 뉴스를 분석해본 결과 진짜보다 가짜뉴스의 확산 속도가 6배 이상 빨랐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가짜뉴스에 더 주목하고 흥분할까. 언론학계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일치하는 기사는 그것이 가짜라도 신뢰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본인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에 뉴스가 그 프레임에 맞으면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검증하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편견과 고정관념은 더욱 강화된다.
가짜뉴스와 비슷한 파장을 낳지만 출생경로는 다른 게 유언비어다. 유신정권 시절인 1974년 긴급조치 1호가 ‘유언비어 날조 유포죄’였다. 민주화에 투신한 많은 사람이 이 죄목으로 옥살이를 했다. 언로가 막혔던 시절, 사막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어렵게 흘러나온 권력 주변의 정보에다 민초들의 바람이 더해진 게 유언비어였다. 과거 독재정권에 의한 정보 독과점이 유언비어를 낳았던 데 반해 지금은 정보의 범람이 가짜뉴스를 생성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 홍수 때 마실 물이 귀하듯 정보의 홍수가 ‘진짜뉴스’를 위축시키는 역설적 상황이다.
인터넷은 초기에 정보의 민주화를 앞당길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누구나 약간의 수고만 하면 거의 모든 정보에 다다를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환호였다. 그러나 그게 비극의 시작일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전문가를 참칭한 비전문가가 정보의 파편들을 제멋대로 짜깁기해 가짜를 마구 찍어낸다.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노 하우(Know How)’보다 빨리 찾는 기술인 ‘노 웨어(Know Where)’가 더 통하는 게 인터넷의 세계다. 연예인 설리의 죽음에서 보듯 유토피아인 줄 알았던 인터넷이 디스토피아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만리장성은 유일하게 우주에서 관찰 가능한 인공구조물이라는 주장을 믿는 사람이 아직 많다.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닐 암스트롱이 분명히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그렇다. 만리장성의 위용에 압도된 이들이 허위사실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또 퍼뜨리기 때문이다(바비 더피의 ‘팩트의 감각’). 지금도 SNS엔 무수한 가짜뉴스가 떠돌아다닌다. 그런 뉴스를 만들어 유포하는 불순세력이 얻을 반사이익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분별한 뉴스 소비가 초래할 결과는 너무 아찔하다.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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