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 항주사범대학교에서 열린 제23회 중국 지용제에 다녀왔다. 정지용 시인의 고향인 충북 옥천군의 옥천문화원이 중국 항주사범대학교와 함께 마련한 행사였다. 항주사범대학교는 2013년부터 한국어학과 학부생을 모집해왔고, 저장성 최초의 한국어전공 학부과정을 개설한 국립대학교였다. 특히 지난해에 항주사범대학교 외국어대학과 옥천문화원은 정지용 문학의 연구와 교류에 대해 뜻을 같이해 항주사범대학교에 ‘정지용문학연구센터’를 설립했다고 했다.
 |
| 그림 서상균 |
지용제에 앞서 개최된 ‘김규흥 한국 독립 운동 학술세미나’도 의미가 있었다. 옥천 출신의 대표적인 독립 운동가였던 김규흥의 행적과 그 의미를 짚어보는 자리였다. 올해는 우리나라의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수립된 것도 100년을 맞은 해여서 중국 현지 세미나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발제를 맡은 부산대학교 배경한 교수는 “한인지사 김규흥은, 신해혁명 직후에 중국으로 망명한 한인 그룹보다 한 발 앞서 1908년경 중국으로 망명하였고 중국 공화혁명의 근원지라고 할 광동지역에서 혁명운동에 직접 참여하여 혁혁한 공로를 세움으로써 당대 중국 혁명파 지도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라며 20세기 초 한국과 중국 사이에 있었던 중한호조(中韓互助)를 누구보다 앞서 실천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뜨거운 열기 속에 본격적으로 열린 중국 지용제 행사는 정지용의 문학 세계를 살펴보는 학술세미나 외에도 현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지용 백일장과 정지용 시 낭송대회 등이 연이어 이어졌다. 행사에는 항주사범대학교 학생들 외에도 한글을 배우고 한글로 시와 산문을 창작하는 인근의 대학생들이 함께 참여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한글을 익힌 학생의 솜씨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학생들은 한국어를 잘 활용할 줄 알았고 문학적인 표현력도 매우 뛰어났다. 중국의 학생들이 한국의 문화에 대해 갖고 있는 뜨거운 관심은 학생들이 직접 준비해서 선보인 케이팝 공연과 정지용 시인 관련 창작 연극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준비한 열정적인 무대에 관객은 박수갈채로 호응했다.
“백성과 나라가/ 이적(夷狄)에 팔리우고/ 국사(國祠)에 사신(邪神)이/ 오연히 앉은 지/ 죽음보다 어두운/ 오호 삼십육 년!//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찬히 돌아오시니!// 허울 벗기우고/ 외오 돌아섰던/ 산(山)하! 이제 바로 돌아지라./ 자휘 잃었던 물/ 옛 자리로 새 소리 흘리어라./ 어제 하늘이 아니어니/ 새론 해가 오르라//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찬히 돌아오시니!”
이 시구는 정지용 시인이 쓴 시 ‘그대들 돌아오시니’의 일부이다. 해방 이후에 고국으로 돌아온 임시정부 요인들을 맞이하는 감격을 쓴 시이다. 식민지시기를 “죽음보다 어두”웠다고 말하고 있고, 해방을 맞아 이제 산과 물과 하늘과 해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신선한 움직임과 신성한 운행을 하게 되었다고 희열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문학은 신변잡사를 그리기보다 사회적 관심과 민족적 사실에 대해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던 시인의 평소 지론이 이 시의 문장에 유장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암울했던 시기를 통과하면서 자신의 양심을 꼿꼿하게 지켜내려 한 정지용 시인의 의지는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서문에서도 잘 읽을 수 있다. “8·15 이후에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간다 (중략) 일제 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무명(無名)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고 썼다. 정지용 시인과 윤동주 시인은 한 번도 생전에 만났던 적은 없었지만, 일본 도시샤대 선후배의 인연이 있었다. 하지만 해방 후에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접한 시인은 유고 시집의 서문을 통해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고 써서 무척 애통해 했고, 동시에 윤동주 시인의 “유고(遺稿)에 분향(焚香)”했다.
중국 지용제를 다녀오면서 새삼스레 느낀 점은 정지용 시인의 시 언어의 우수성에 관한 것이었다. 일찍이 문학평론가 권영민 선생은 청계천 헌책방 순례를 하다 우연히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 초판본을 만나게 된 순간의 감격을 말한 적이 있다. 또한 권영민 선생은 시집 ‘백록담’을 평가하면서 이렇게 썼다. “나는 이 시집 속의 시들에서 느낄 수 있는 시인 정지용 특유의 언어적 조형성에 늘 탄복한다. 정지용 시를 읽는 즐거움, 그것은 바로 그 언어의 유곡을 따라가는 조바심에서 비롯된다. 정지용이 언어를 다루는 솜씨는 누구도 흉내내기 어렵다. 정지용에 감탄하다가도 나는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똑같은 표지의 요즘 시집들에 대해 불만이다. 똑같은 표지의 시집들처럼 시의 목소리까지 서로 닮아 버린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렵다.”
중국의 대학생들이 한국어를 처음으로 배우고, 그 언어를 빌려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속마음을 문학의 장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을 직접 보면서 나는 어떤 뭉클한 감정 같은 것을 느꼈다. 그것은 언어의 국경이 사라지는 광경 같은 것이기도 했다. 하나의 언어가 국경 너머로 건너가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서 하나의 새로운 산업처럼 활동하고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광경 같은 것이었다. 한 명의 시인의 성정, 행적 문학작품이 그의 사후에도 타국의 누군가의 삶에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
공통의 언어를 통해 상호의 이해와 친밀감을 확장하는 일은 지금 시대에 훨씬 중요해졌다. 국가와 국가의 갈등이 첨예화될수록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는 문화적 전통과 역사에 대한 상호간 존중으로부터 마련되는 경우를 우리는 보다 빈번하게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화해와 공존에 다다르게 하는 것은 언어의 힘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중국 지용제 개최의 의미를 옥천문화원과 중국 항주사범대학교만의 교류 그 이상의 특별한 가치로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