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한하는 외국 스타들은 환호하는 한국 팬들에게 자연스럽게 ‘손가락 하트’를 날린다. 하지만 2년 전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는 이것 때문에 살짝 당황스러운 순간을 겪었다. 주한 미국 대사관저에서 행사를 치르고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할 때였다. 모든 사람이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사진을 찍는데 그 의미를 모르는 여사는 혼자 차렷 자세였다. 미국에선 이 동작이 ‘달러’ 즉 ‘돈’을 뜻하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프레젠테이션의 제왕’이라 불린 고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손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청중을 휘어잡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손바닥을 쫙 펴는 포즈를 자주 취했다. 문화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타인에게 손바닥을 드러내는 행위에는 ‘저를 다 보여드립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잡스는 때론 손을 모아 배꼽 위에 놓으며 공손함을 표하기도 하고, 강조해야 할 부분에서는 주먹을 꽉 쥐어 보임으로써 강인함 자신감 의지를 표출했다. 이처럼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보디랭귀지 수단이 바로 손이다.
부하 여직원의 손을 주무르고 그 여성이 싫다는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잡은 손을 놓지 않은 30대 회사원이 강제추행 혐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손 자체는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로 보기 어렵다”는 게 이 사건을 다룬 수원지법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와는 달리 처음 보는 여성의 발가락을 만진 남성이 성추행 혐의가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일이 3년 전에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발가락을 만지는 행동이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사람의 신체 부위 중에서 손이 발가락보다 성적 수치심을 덜 일으킨다는 데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1992년 개봉한 제인 마치와 량자후이(양가휘) 주연의 ‘연인’은 남녀가 손을 잡는 행동만으로도 얼마나 야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10대 프랑스 소녀와 30대 중국 남성이 자동차 뒷좌석에서 손을 포개고 깍지를 끼는 장면은 어떤 정사신보다 에로틱하다. 보통 사람은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악수도 하고 격려의 의미로 다독이기도 하지만, 비공식적인 상황에서는 이성에게 함부로 손을 내어주지 않는다. 피해자가 판결에 불복해 재판이 상급심으로 올라가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1심 재판부에겐 미투 사건 이후 유행어가 되어 버린 ‘성인지 감수성’이 많이 부족해보이는 건 사실이다. 재판부가 정말 주목해야 했던 건 손가락이든 발가락이든 신체의 특정 부위가 아니라 여성의 거부 사실이었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