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지방(비수도권)은 존재하는 걸까? 이런 존재론적 질문은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라고 (특히 수도권 사람으로부터) 비난받기 딱 쉽다. 설령 현재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소멸될 것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한국고용정보원 ‘한국의 지방소멸’(이상호, 2018) 보고서에 소멸위험지수(20~39세 여성 인구수/65세 이상 고령 인구수)가 계산되어 있다. 이 지수가 0.5 이하이면 소멸 위험 지역으로, 특히 0.2 미만이면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소멸 고위험 지역은 붉은색으로, 소멸 저위험 지역(1.0 이상)은 녹색으로 표시하였다. 전국 3463개 읍·면·동을 표시했을 때, 수도권과 대도시 주위를 제외한 전 지역이 붉은색으로 뒤덮였다. 부산의 경우 영도구(0.427)와 동구(0.450)를 중심으로 소멸위험 동이 2013년 8.3%(17/204개)에서 2018년 28.4%(58/204개)로 20.1% 증가하였다.
부산연구원 보고서(이정석, 2019)는 수도권 관련 다양한 지표를 보여준다. 2018년 전국 대비 인구(49.75%), 종사자 수(51.36%), 사업체 수(47.21%), 연구개발 투자비(68.76%), 본사·본점 등 사업체 수(57.83%), 정보통신업 사업체 수(72.06%) 및 종사자 수(80.26%), 대학 수(37.17%) 등이다.
지방은 예산과 행정에서도 ‘2할 자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방세와 국세의 비율이 정확히 2 대 8이고, 지방정부의 자치사무 비율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재정자립도는 수도권이 평균 68.9% 수준인데, 5대 광역시는 평균 48.9%, 9개 도는 평균 30.8% 수준이다. 전체 면적에서 11.8%를 차지하는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도)에 예산·행정, 교육과 산업 등 모든 분야가 집중되어 있다.
이런 집중력을 바탕으로 수도권은 지방의 인재를 끌어들여 교육하고 질 좋은 직장을 제공한다. 그들은 거기서 정착하고 지식·정보 면에서 점한 우위를 바탕으로 연구 및 기술개발 공동체를 형성하며 새로운 산업을 창출한다. 이런 신산업들은 파급효과가 크므로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하여 지방의 인재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노동력을 유인한다.
반면 지방은 이른바 전통산업인 농업, 수산업, 임업과 내수 중심의 중소 제조업만 남아 수도권에서 필요로 하는 원재료나 단순 노동력을 제공하는 ‘하청기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런 약탈적 구조가 강고해지는 것을 보면서 강준만 교수의 “지방은 내부 식민지다”는 주장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중앙정부가 손 놓고 있었단 말은 아니다. 1995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이명박 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부는 행정수도(세종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이전, 지방행정체제 개편 등을 핵심 과제로 추진했지만 성공했다는 근거는 없다.
어디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가? 지방은 이런 ‘내부 식민지’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먼저 ‘독립운동’에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이 운동을 이끌 인재가 필요하고 지방 스스로 이런 인재를 발굴하고 정착시켜야 한다. 이것을 위한 조건으로 먼저 지방세와 국세 비율을 4 대 6으로 높이고 행정권한도 40%로 확대하여 먼저 ‘4할 자치’를 쟁취해야 한다. 그다음 확보된 예산을 가지고 지방 인재가 정착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이는 각 지방 특성에 맞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기초학문, 응용학문 및 기술개발 등이 연계된 연구공동체를 바탕으로 한다.
이런 연구기술개발이 축적되어 관련 신산업이 창출되고 발전하면 파급 효과로 산업생태계가 형성된다. 또 지방 특성 산업에 대한 기술, 지식과 숙련도 축적은 국제경쟁력으로 이어져 세계시장과도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지방은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지면서 인재가 모이고 인구가 유입되면 각 지방이 바로 그 산업의 수도가 되지 않겠는가?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탠퍼드 공대 학장이었던 터먼은 말했다. “실리콘밸리에 처음 연구기술개발공동체를 만들 때 여기에 아무것도 없어 세계가 너무 커 보였다. 이제 세계가 여기에 있다.”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