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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솔로몬 심판’과 오늘 우리의 송사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17 19:40:06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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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이 왕의 법정을 찾았다. 여인들은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신이 아기의 어머니임을 주장했다. 왕은 두 여인이 서로 옳다고 하니 아기를 칼로 잘라 반씩 나누어 가지라고 했다. 그러자 한 여인은 그렇게 하자고 했고, 다른 여인은 아기를 죽이지 말고 저 여인에게 주라고 했다. 이것으로 누가 진짜 엄마인지 자명해졌고 왕은 그에 따라 현명한 판결을 했다.
그림 서상균
누구나 다 아는 ‘솔로몬의 심판’ 이야기다. 다 아는 이야기를 되새기는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을 이 역설적인 고사로 비추어보고 싶어서다. 이것이 우리가 어릴 적부터 배워왔던 솔로몬의 지혜와 고귀한 모성을 넘어서는 논제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 왕의 시대에도 당연히 율법이 있었다. 솔로몬이 법에 호소하러 온 사람에게 아이를 잘라 ‘똑같이 반씩’ 나누어 가지라고 한 말은 공정함을 보장한다는 율법의 경직성을 은유하고 있다. ‘법대로’만 한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법정에 충격을 준 소송 사건에서 솔로몬은 법적 판결을 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 해법을 찾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법정을 위기에서 구하고 감동받은 백성들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받게 된다. 이를 정치적 차원으로 확장하면 통치의 본은 법치가 아니라 ‘인치(人治)’임을 의미한다.

솔로몬의 사례는 유사한 형태로 여러 문명권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곳에서는 진짜 엄마를 가려내기 위해 왕이 두 여인 사이에 금을 긋고 아이의 팔다리를 잡아당기는 일종의 줄다리기를 명한다. 물론 진짜 엄마는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까 봐 ‘공정한 판결’을 위한 ‘시합’을 포기한다. 이런 설화들은 대개 율법을 만들고 나라의 제도를 정비해가는 건국 신화와 연관되어 있다. 성서 ‘열왕기’의 작가도 왕좌에 오른 솔로몬이 통치자로서 “백성을 다스리고 흑백을 가려낼 수 있는 명석한 머리”를 달라고 하느님께 비는 꿈 이야기 바로 다음에 ‘솔로몬의 심판’ 얘기를 적었다. 곧 이 얘기가 단순히 지혜로운 판결의 한 예가 아니라 ‘통치의 근간’에 관한 것이며 그 근간은 인치라는 뜻으로 서술한 것이다.

백성의 관점에서 두 여인은 사회 갈등의 메타포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가치를 지키려는 자’와 ‘욕망의 극대화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 사이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곧 자신을 지키려는 자와 훔치고 속이려는 자 사이의 다툼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자신을 지키려는 자는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솔로몬의 얘기가 감추고 있는 역설적 비수는 다른 데 있다. 송사를 일으킨 원고가 진짜 엄마가 아니라 가짜 엄마일 수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열왕기’에서는 한 여인이 먼저 송사의 이유를 설명한다. 두 여인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누가 진짜 엄마인가를 다투게 되었는데 이 여인은 그 과정을 아주 상세히 설명한다. 그 말을 듣고 난 다른 여인은 거짓말이라며 격분한다. ‘열왕기’에서는 원고와 피고를 분명히 적시하고 있지 않지만, 길게 설명한 여인이 원고일 가능성이 크고 그가 가짜 엄마임을 엿볼 수 있다. 로저 영(Roger Young) 감독도 영화 ‘솔로몬’에서 이런 해석을 따른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피해자만이 송사를 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아니 사악한 가해자가 송사를 일으킬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가짜 엄마의 관점에서 보면 가해자가 ‘법의 덫’을 자기 쪽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법은 구원의 동아줄일 수도 있고, 처벌의 덫일 수도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송사를 벌일 수도 있고 남을 가해하려는 목적으로 고발과 소송을 할 수도 있다. 간접적인 이득을 위해 그럴 수도 있다.

송사는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동서고금의 고전이 일깨워 주고 있다.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인간 세상의 문제를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송사로 해결하려는 것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송사는 남발되고 있다. 진짜 피해자가 억울함을 법에 호소하는 것을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법과 검찰과 법원은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국회의 사법화’라는 냉소적 비판이 나올 정도로 우리나라 정치인은 고소·고발을 멈추지 않는다. 정치인의 정치력 부재에 수치심조차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법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법을 악용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법치국가를 위해 의회가 존재한다는 변명을 한다. 하지만 송사가 많을수록 법적 기관의 권력은 늘어난다. 왜곡된 법치주의가 무력한 의회민주주의를 추월하는 격이다.

일부 국민도 법치국가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법치국가를 마치 이상적인 국가 형태로 여긴다. 그래서 ‘법대로’라는 정치 구호에 쉽게 현혹된다. 하지만 현대국가에서 법치는 국가의 기본이지 이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법치국가를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정치의식의 차원에서 어리석은 일이고, 현실에서 아직 법치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법 체계를 이루는 모든 것의 본질적 특성은 무엇인가. 그것이 검찰의 수사든, 법원의 재판이든 그 특성은 ‘결정’에 있다. 기필코 답을 내야 한다. 수사는 어떻게 하든 결론을 내야 하고, 재판은 반드시 판결해야 한다. 이것이 법의 능력이자 동시에 한계이다. 법조인의 임무 수행에서 ‘결정의 압박’에 따른 실수는 불가피하다. 그런 결정이 나라 사람들에게 구속력을 갖는다. 실정법 상 그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숙한 시민과 민의를 대변하는 정치인은 법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도록 노력한다.

공동체에 법은 필요하다. 그러나 결코 충분하지 않다. 이 불충분성에 대한 의식이 충만한 공동체가 건강한 것이다. 고대 왕국의 인치를 위해서는 주권자인 솔로몬 왕의 지혜가 필요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주권자인 국민이 지혜로워야 한다. 법이 아니라 자신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분명한 의식과 그에 따른 자율적 실천이 불필요한 법 의존도를 줄인다. 그것이 법적 기관의 권력 남용 없는 인간적 공동체를 위한 인치의 길을 가능하게 한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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