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아름드리쯤 되면 사람이다/안으로 생각의 결 다진 것도 그렇고/거느린 그늘이며 바람 그 넉넉한 품 또한//격으로 치자면 소나무가 되어야 한다/곧고 푸르른 혼 천년을 받치고 서 있는/의연한 조선 선비 닮은 저 산비탈 소나무//함부로 뻗지 않는 가지 끝 소슬한 하늘/무슨 말로 그 깊이 헤아려 섬길 것인가/나무도 아름드리쯤 되면 고고한 사람이다’(박시교 시인의 ‘나무에 대하여’ 전문).
박시교 시인은 ‘나무도 아름드리쯤 되면 고고한 사람이’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시인은 나무 중에 넉넉한 품을 가진 ‘소나무가 되어야 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며, 오랜 세월을 통해 전통 목조문화재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다양하고도 폭넓게 이용한 나무가 바로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솔’과 ‘나무’ 두 낱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솔은 원래 ‘수리’ 즉 우두머리를 뜻하는 옛말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수리’가 ‘술’로 바뀌었고 이 말이 다시 ‘술’과 ‘나무’가 합성될 때 모음조화 현상으로 ‘술’이 ‘솔’로 바뀌게 되어 솔나무가 됩니다. 솔나무가 소나무가 된 것은 ‘음운탈락현상’이 일어난 것이죠.
‘수리’란 말 속에 상(上), 고(高), 원(元)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나무는 우두머리 나무 즉 나무 중 가장 으뜸인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애국가 2절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바람서리에도 변하지 않는’ 소나무의 기상이 한민족의 기상이라는 거지요. 흰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푸름을 유지하는 소나무를 우리는 경외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숭앙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또 오랫동안 우리 지폐 중 가장 고액권이었던 만 원짜리 지폐를 펴보면 일월오봉도에 적송 두 그루가 늠름하게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의 문명과 문화가 소나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소나무는 육송과 해송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해안가에 분포하는 해송은 수피(樹皮)가 검은 갈색으로 흑송이라 하기도 하고 솔잎이 곰의 털같이 억세서 곰솔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해안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해송은 육송보다 검고 잎도 바닷가의 거친 환경에 적응하여 훨씬 강합니다. 부산에서 유명한 해송은 수영 사적 공원에 있는 수령 약 400년이 된 해송입니다. 높이 22m, 둘레 4.5m이고, 가지 길이는 동쪽 8m, 서쪽 11m, 남쪽 9.6m, 북쪽 12.1m입니다. 땅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지는 부분까지 12m에 이르며, 껍데기는 거북의 등처럼 갈라져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에 경상좌수영(左水營)이 있었는데, 당시 군사들은 부산 좌수영성지 해송이 자신을 보호해 주고 지켜 주는 군신목(軍神木)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문화적 자료로서의 보존 가치가 높아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270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우리가 일반적으로 소나무라 부르는 것은 육송을 말합니다. 황장목이라고도 불리는 한국 제일의 소나무 금강송도 육송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꾸불꾸불한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바르며, 마디가 길고 껍데기가 유별나게 붉습니다. 이 소나무는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학자들이 금강소나무(金剛松), 혹은 줄여서 ‘금강송’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금강송의 푸른 결기를 느끼게 하는 시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다//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 설뿐//조락 이후 충천하는 개골의 결기 같은/팔을 다 잘라낸 후 건져 올린 골법 같은/붉은 저! 금강 직필들! 허공이 움찔 솟는다’(정수자 ‘금강송’ 전문).
가슴이 시원해지지 않나요? 하늘 높이 치솟은 금강송의 위용을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금강 직필들!’로 노래하고 있군요. 서슬 푸른 금강송의 내면을 분명한 이미지로 그려낸 절창입니다.
팔이 안으로만 굽는 탓일까요? 요즘 우리 사회는 진영 간 지나친 갈등으로 너무 시끄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꽃다발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푸른 결기’가 필요합니다. 금강송과 같은 그런 사람이 더욱 그리운 아침입니다.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