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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초읽기 들어간 북미 비핵화 협상 /차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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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14 19:47:52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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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현재 용납될 수 없는 핵무기를 갖고 있으며, 절대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를 용납할 수 없다면, 군사적 옵션도 고려할 수 있다.” 자연인으로 돌아간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워싱턴DC에서 중앙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 주최한 포럼의 핵심 강연자로 초청됐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으니, 하노이 회담이 성공했을 리 만무하다. 실제 그는 북한이 모욕적으로 생각하는 이란식 협상 모델을 제시했고, 하노이 회담 결렬의 원인을 제공했다. 그는 자신을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해 그 자리에 선 점을 북한 지도부도 기뻐할 것이라는 인사말로 시작하면서, 강연 내내 북한 핵문제에 대해 워싱턴 정책 서클뿐만 아니라 한국 보수층의 인식을 대변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필자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주장하는 볼턴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핵 문제 등 북한의 과거 행위를 돌아보면 이들에게는 북한을 불신할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자면 ‘아비투스(habitus)’의 개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아비투스란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가 강조한 개념으로 특정한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향,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의 체계를 의미한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특정한 인식 체계를 형성하게 되기에,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바라보는 그들의 생각은 나름 충분히 근거가 있다. 우리 모두 아비투스가 부여하는 다양한 인식 체계의 굴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협상론자도 북한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협상론자에게는 이들과 다른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협상론자는 수천만 명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파괴적 전쟁을 옵션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평화적 방법으로 현실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협상론자도 북한이 자발적으로 비핵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므로 보상과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갖고, 협상을 통한 합의의 형태로 북한 행위를 구속하려 한다. 이 점에서 ‘전략적 인내’라는 허울 좋은 수사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한반도 위기를 증폭시켰던 오바마 행정부보다 트럼프 행정부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오바마 정부 시기의 협력자였던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국제 정치사는 역사 수레바퀴를 돌려 새 시대를 여는 것은 아비투스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 가능했음을 보여준 바 있다. 1970년대 데탕트를 가져왔던 마오쩌둥과 닉슨의 정상회담이,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탈냉전 협상’이 모두 그러했다. 이들이 자신만의 아비투스에 갇혀 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냉전시대에 살고 있을 것이다.

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비핵화 협상이 결렬됐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셈법 변화를 연말까지 요구해왔는데, 김명길 북측 대표는 미국 측 안을 저울질하고 아무런 준비 없이 나왔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선제적으로 취했던 조치-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동창리 엔진시험장 해체, 미군 유해 송환 등 - 에 상응하는 미국 측의 보상을 우선해서 얻어내는 것을 하노이에서 실추된 자존심을 회복하는 협상의 첫 단추로 여겼을 것이다.
이 결렬 선언은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의 기술이기도 한데, 북한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뚜렷한 대외정책 성과가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비핵화 합의를 원하고 있기에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 믿고 있다. 결국 연내 어느 시점에 북미 간 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조심스레 예측할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은 잘게 잘라서 주고받는 동시적·단계적인 방식과 전체 비핵화 일정표에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핵화는 최종 목표인 동시에 일련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은닉된 핵시설의 폐기 절차와 방식에 합의하고, 미국은 체제 안전 보장과 민수용의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주고받음의 순서도를 그려야 한다.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을 시 스냅백(snapback) 조항도 꼭 필요한 사항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시계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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