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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촉촉하고 축축한 낭독회 /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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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10-10 19:51:09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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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대구에 갔다. ‘시인보호구역’에서 신간시집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낭독회가 있었기에. ‘시인보호구역’은 시인 정훈교가 운영하는 서점 겸 공연카페, 출판사로 다양한 프로그램의 인문학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그가 7년 이상 대구 중심가의 그 공간에서 지역문화운동을 할 뿐만 아니라 무난하게 생활을 꾸려나간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동대구행 KTX를 타고 가며 설렜다. 나의 낭독회보다 ‘책방이듬’ 운영 자문을 구하고 사업방법이나 수완을 전수받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김이듬 시인의 닝독회가 마지막 낭독회가 될 것 같네요. 더 버티지 못할 형편입니다.” 정훈교 시인이 나를 보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중상류층이 살 법한 아파트 밀집지역 상가 지하에 있는 시인보호구역은 무척 넓어 백여 명 수용할 만한 아름다운 공간이었지만, 책방지기의 인건비는커녕 월세조차 제때 낼 수 없을 정도로 몇 해를 근근이 이어오고 있었다. 작년에 나는 동네책방 지원사업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서울 신촌에 위치한 작은 책방에서 몇몇 책방지기가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행정사무관, 학예연구사 등과 대담을 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대다수 동네 책방은 구조적인 문제로 망할 우려가 있으니 실효성 있는 지원프로그램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내 옆에 있던 젊은 책방지기가 “우리 책방은 절대 안 망할 거다”고 장담했던 순간도 기억에 또렷하다. 그렇게 확인할 수 있는 패기와 믿음이 부럽다기보다는 무서웠다.

어렵사리 찾아간 낭송회장 객석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촉촉한 낭독회’라는 제목으로 지속적으로 진행해온 그 행사에는 독자층이 두꺼운 시인 박준과 류시화 시인 등도 왔다는데 그때도 시집이 두어 권 팔릴 정도였다며 정 시인은 씁쓸하게 나를 위로했다. 울음을 터뜨릴 정도의 실망감과 슬픔이 내 가슴을 눌렀지만 어느 때보다 완전히 고백적으로 시에 관한 얘기를 했다. 어떤 분은 “책방이듬을 열게 된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었고 어떤 분은 “예전의 시들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며 전위적이었는데 이번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의 시들은 기운이 빠져 좀 부드럽다고나 할까, 변했다고나 할까, 뭔가 다른 느낌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삶이 바뀌니 시도 바뀌나 보다며 난 궁색한 변명을 했다.

실제로 나는 기운도 맥도 없이 뒤풀이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가 먼저 일어나겠다며 밖으로 나왔다. 정 시인과 송재학 선생님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소수의 관객 사이에서 두 분의 얼굴을 마주보기가 몹시 민망하고 미안하며 부끄러웠다. 정 시인이 뒤따라와서 차비를 쥐어주었다. “책방 문 닫게 되면 놀러갈게요”라고 말하며. 폐만 끼친 듯한 ‘촉촉한 낭독회’는 그야말로 우울하고 축축했다. 우리는 책으로 먹고살려는 게 아니라 책과 함께 살려는 건데, 월등한 책방지기가 아니라 친구 같은 책방지기가 되려는 건데….

멀지 않은 거리에 아는 언니 둘이서 운영하는 아트갤러리가 있었다. 번화가에서 철물점이 모인 청회색 느낌의 동네로 이전했다. 두 사람은 여전했다. 여전히 위태위태하게. 독립갤러리를 운영한답시고 아트 디렉터인 언니는 집을 팔았고 대표를 맡은 언니의 엄마는 속을 끓이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날도 두 분은 그룹전 기획과 책 편집을 위해 토요일 밤을 갤러리에서 지새우다시피 했다. 나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저녁밥을 먹었다고 했다. 두 끼 굶은 공복에 대나무잎차 몇 모금 마시고 그림들을 두리번거리다가 그곳을 벗어났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이 도전적으로 흘러갔다.

인문학과 예술을 나누는 소규모 공간은 소중하지만 사람 속으로 스며들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경제적 문제로 우리는 아마도 망할 것이고 절대 안 망하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망할 것 같다.

책방이듬이 시인보호구역처럼 7,8년 버틸 재간도 담력도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혼신을 다하지 않고 힘을 좀 비축할 것인가. 헤어질 것을 알고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 미친 연인들처럼, 언젠가 죽을 것을 아니까 하루하루 죽을 듯이 소용없는 일에도 치열할 수 있는 건 아닌지. 내가 극단적인 걸까? 초가을 바람 불어 덜컹거리는 퍼런 철공소 문 옆 담벼락에 혼자 머리 찧으며 울던 밤이 지나갔다. 너무 세게 머리를 박은 걸까? 그 여파로 자신감과 의욕 저하, 수면장애를 심히 겪고 있다.

시인·책방이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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