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이스라엘 수상인 빈야민 네타냐후는 1993년 처음으로 리쿠드 당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최연소 수상으로 일했다. 그 후 잠깐 정계를 떠나 있던 그는 2009년 다시 수상이 되었고, 지금까지 수상직을 유지하여 최장수 수상이 되었다.
이런 이력만 보면 네타냐후 수상은 의원내각제를 실시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민주적인 선거 결과에 따라 통치하고 있는 정치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올해 들어 이스라엘에서는 두 차례나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는 일이 벌어졌다.
먼저 네타냐후 정부 내부에서 정통파 유대인들의 징집제도를 놓고 이견이 생겼고, 네타냐후 수상의 부패 혐의가 불거지자 이 정세를 타계하기 위해서 총선을 선택했다. 그래서 지난 4월 9일 총선을 실시했고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이 35석, 반대파인 베니 간츠의 카홀라반당이 35석을 차지했다. 선거결과는 동률이었고 누구도 과반수인 61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네타냐후를 지지하는 우파 정당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였으므로 정부 구성권을 잡았고, 연합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에 착수했다.
그러나 정해진 기한에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자 결국 재선거가 실시됐다. 지난달 17일 이스라엘은 다시 총선을 실시했고 네타냐후 총리가 32석, 간츠가 33석을 얻었다. 그러나 역시 네타냐후를 지지하는 우파 정당이 더 많았기 때문에 네타냐후가 정부 구성권을 받았고, 현재 두 번째로 연합정부를 구성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득표수에서 보듯 이스라엘 사회는 네타냐후를 지지와 반대 세력 둘로 갈라져서 당분간 민심이 변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런 가운데 반복되는 선거전은 국가의 미래를 향한 장기적인 계획이나 노선보다는 부차적인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상대 후보나 그들이 대표하는 인구집단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감정적인 선동으로 변질되고 있다.
벌써 10년이 넘게 수상직을 연임하고 있는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경제를 안정시켰고 팔레스타인 사람의 테러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그는 기업가들에게 고가의 선물을 받은 혐의, 언론에 개입하여 여론을 조작했다는 혐의, 이스라엘 최대의 통신회사가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으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이다. 그러므로 그는 선거에서 승리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었으며, 새로 구성할 정부에서 현직 수상의 면책특권을 규정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시간을 벌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지지 세력을 규합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현재 불법점유하고 있는 요단강 서안 지역을 이스라엘 영토로 병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상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말이었다. 네타냐후는 두 번째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스라엘 국적 아랍인 정당인 발라드당이 불법투표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많은 득표를 했을 리가 없다면서, 아랍지역 투표소에서 불법적인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법을 발의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차별 정책이며, 그렇지 않아도 투표율이 높지 않은 아랍 유권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정책이었다. 또 네타냐후는 소규모 우파 정당들과 제휴하여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정당이 대마초를 합법화하자고 주장을 하든(제훗당),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한 범죄자를 떠받드는 인종주의적 정당이든(오쯔마 예후딧당) 가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랍인들이 우리를 멸망시키러 온다’고 인종주의적인 발언을 하면서 안보불안 상황을 확대재생산했고, 이런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지자로 묶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가기관과 사회기관들이 서로 견제하며 제 역할을 할 때 실현 가능한데, 네타냐후 수상은 자기의 혐의를 조사하는 경찰을 매도하고, 비판적인 언론은 마녀사냥을 한다고 비난하여 이런 기관들을 무력화하고 상대화시켰다. 민주주의는 시민 개인이 공정하게 자기평가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네타냐후는 야당 의원들을 ‘배신자’라고 부르며 권력의 시녀가 되기를 종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군사적 점령과 인명 살상 등을 교묘하게 세탁한 언어로 감추면서 유권자들이 제대로 된 그림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자유 민주주의는 간판일 뿐이고 진실을 조롱하고 평등과 정의와 정직을 부인하는 선동적이고 차별적인 대중정치만 남게 된 것이다.
네타냐후는 민주주의 국가의 적법한 수상이다. 그러나 독재는 실패한 민주주의가 낳는 자식임을 유념해야 한다.
건국대 중동연구소 전임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