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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법률] 시간이 주는 면죄부, 공소시효 /박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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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09 18:58:40
  •  |  본지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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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특정되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용의자가 자신이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자백을 했지만, 공소시효의 만료로 인해 처벌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점도 더불어서 말이다.
그림 서상균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종료된 후에 법에 정해진 일정한 기간 동안 검사가 피의자의 처벌을 구하면서 법원에 공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할 수 없는 제도이다. 즉,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범죄사실에 대한 국가의 형벌권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이다.

누군가는 죄를 짓고도 잡히지 않고 도망만 잘 다니면 처벌을 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공소시효라는 제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범죄 혐의가 명확한데도 단지 장기간 도피에 성공해 수사기관에 잡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법감정과 사회정의에 부합하냐는 것이다. 실제 공소시효 만료로 인하여 처벌을 할 수 없게 되는 사건이 한 해 평균 4500여 건에 이른다고 하니 많은 사건이 공소시효라는 제도 앞에서 무력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여론을 반영하여 공소시효는 점차 연장되거나 폐지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이유로 유지되고 있다.

공소시효 제도가 도입된 가장 큰 이유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범죄 발생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미 피해자나 목격자 등 사건 관계인들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물리적 증거 역시 상당 부분 변질 내지는 훼손되기 때문에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0명의 범인을 잡는 것 보다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명제를 두고 본다면 설득력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범인이 장기간에 걸친 도피 생활 동안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했을 것이므로 이미 처벌을 받은 것과 유사한 경험을 하였다고 보아 처벌의 필요성이 낮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마지막 이유는 범죄는 계속 발생하는데 수사인력과 수사장비를 먼 과거의 사건들에까지 할당할 경우 수사의 효율성과 적절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적어도 살인죄와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에 있어서만큼은 앞서 살펴본 공소시효 제도의 도입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공소시효는 평생 마음속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유족들과 피해자의 감정과 배치된다. 또한 살인죄와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의 목격자는 시간이 흐른다 하더라도 그 충격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을 망각할 가능성이 낮고 최근 증거보존 기술과 장비의 발전으로 인해 범죄 혐의의 입증이 보다 용이해졌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목적에도 부합한다.

1991년 당시 9살이던 어린이가 유괴되어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범인을 잡지 못한 채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 ‘그놈 목소리’가 2007년 개봉되었다. 이후 공소시효를 연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2007년 12월 기존에 15년이었던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마지막 10차 사건도 1991년에 발생했는데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어나기 이전인 2006년에 이미 공소시효는 만료되어 버렸다. 공소시효 연장이 조금만 빨리 이루어졌다면 주요 장기 미제사건의 해결에 실마리가 되었을 것인데 안타깝다.
2015년 일명 ‘태완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었다. 2019년 7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공소시효에 관한 특례규정을 두어 13세 미만의 아동에 대하여 폭행이나 협박뿐만 아니라 위계 또는 위력을 이용하여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까지 공소시효를 배제하도록 했다. 국민들의 법 감정과 사회 분위기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국가가 시간의 흐름이 주는 제약에서 벗어나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사례가 점차 줄어들길 바란다.

변호사 · 법률사무소 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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