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나의 마음의 어둑한 고요의 공간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소리의 회색 황혼’이라고 써서 가을날을 살아가는 자신의 내면을 노래했다. 가을에는 조용한 공간이 내면에 생겨난다. 조금 쓸쓸하면서도 잠잠한 시간을 살게도 된다. 이런 시간은 자신을 우물처럼 들여다보는 때이기도 하다. 책을 펼쳐 읽다가 책갈피를 꽂아두고 가만히 생각에 잠기어도 좋은 때이다. 책을 많이 구매하진 못하더라도 읽고 싶었던 한두 권의 책을 이 가을에 첫 장부터 끝까지 다 읽어도 좋겠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쓴 ‘이목구심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손님이 혀를 차면서 “문을 나서서 세상에 나가면 온통 욕이요, 책을 열면 부끄러움 아닌 게 없네”라고 탄식하자 “책을 읽으며 매양 실천할 것을 마음으로 삼고, 골수에 젖어들게 하여, 바깥 사물의 일을 가지고 겉가죽으로 삼지 않는다면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다만 날마다 부끄러움은 있게 마련인지라 독서가 아니고서는 또한 사람이 될 수 없겠기에 공부를 하는 것뿐이네”라고 말했다. 책 읽기의 즐거움과 이익에 대해 쓴 문장으로는 단연 명문이 아닐까 한다.
새로이 산문집을 내고 나서 독자들을 만나는 여러 행사를 가졌지만, 최근 한 책방으로부터 온 제안은 특별했다. 책방에서 운영하는 북클럽 회원들을 위해 저자 사인을 직접 해서 보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수백 명의 북클럽 회원에게 보낼 책에 하나하나 사인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 책방의 기획이 참신했고, 또 책을 지은 사람으로서 책방 북클럽 회원들이 내 책을 사 함께 읽는다고 하니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이 책방에서는 매달 좋은 책을 골라 북클럽 회원들에게 그 책을 고른 이유를 밝힌 편지와 함께 보내주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서로 토론하고 독후감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특정 분야를 정해놓고 책을 고르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소설, 시와 에세이, 역사, 경제,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망라한다고 했다. 다만, 생각의 경계를 넓혀주는 책, 통찰력을 품고 있는 책, 혹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을 고른다고 했다. 책방 주인과 북큐레이트, 외부 자문단이 참여해 최종적으로 회원들에게 보낼 책을 선정한다고 했다.
이 책방의 이런 시도가 의미 있고 또 돋보이는 것은 책방이 독자를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고, 독자의 마음에 독서열을 지펴 이끌어간다는 데 있다. 또 저자와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저자의 책에 대한 이해를 서로 교환함으로써 책에 대한 해석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로 인해 독자는 개인의 독서 총량을 늘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격년으로 발표하는 ‘2017년 국민 독서 실태’ 결과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성인 열 명 가운데 네 명이라고 한다. 연간 독서량도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성인의 종이책 도서 구입의 경로를 살펴보면 소형 서점은 10.6%였고, 이에 비해 대형 서점(38.5%)과 인터넷 서점(23.7%)을 이용하는 사례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소형 서점이 동네책방의 형태로 들어서면서 독서 인구를 늘리는 일에 풀뿌리 역할을 하곤 있지만 책방 운영에서는 고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물론 독서 인구 확대를 위한 의미 있는 변화들이 책방들과 도서관을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이즈음의 모습은 긍정적이다. 한 지자체에서는 청년들의 독서문화 지원에 나섰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 지자체에서는 지역의 공공도서관에서 6권 이상의 책을 빌려본 만 19세 이상의 사람에게 2만 원 상당의 모바일 상품권을 연 1회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 대신 모바일 상품권은 지역의 서점에서 책을 사는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한정했다. 의미 있는 정책이라는 생각이다.
개인이 완독한 책을 기록함으로써 책 읽기에 동기를 부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독서 통장은 학교나 지역의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거나 반납할 때 통장 모양의 기록지에 읽은 책명, 대출과 반납 일자를 남겨놓는 방식이다. 독서 통장 정리기가 있어서 독서 기록을 도와준다. 이 독서 통장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발급해왔으나 점차 성인 독자도 독서 통장을 만들고 있다. 독서 계좌 만들기도 요즘 인기가 높다. 책을 다 읽을 때마다 자신의 전용 계좌에 일정한 금액을 입금하는 방식이다.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요즘 입소문을 타고 있는데, 읽은 책을 기록으로 남겨놓을 뿐만 아니라 저축을 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출판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가을의 책 판매량은 기대 이하라고 한다. 책 읽기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방안도 더 많아졌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무엇보다 독서가 한 개인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스스로 알 필요가 있다.
‘오거서(五車書)’라는 말이 있다.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 많은 책을 일컫는다. 장자의 친구였던 혜시(惠施)는 소장한 책이 다섯 수레에 이를 만큼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다독가였다.
당나라 때 문학가였던 한유는 아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면서 시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를 지었다. ‘가을이 되어 장마 걷히고(時秋積雨霽)/ 서늘한 바람이 교외(들녘)에 불어온다(新凉入郊墟)/ 이제 등불을 차츰 가까이해(燈火稍可親)/ 책을 펼쳐 볼 만하다(簡篇可卷舒)’고 썼다. 이 시에서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한유는 이 시에서 나무가 둥글게 혹은 모나게 깎이는 것은 목수의 손에 달려 있고,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은 뱃속에 글이 얼마나 들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또 사람이 태어날 때는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같고, 어린 시절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성장하면서 능력이 달라지고, 배우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마치 맑은 냇물과 흙탕물 도랑의 차이만큼 그 사람 됨됨이가 다르게 된다면서 독서를 권장했다. 다섯 수레의 책이 아니더라도 독서를 생각해보는 가을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