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스팸 선물세트를 받았다. 이제 스팸 선물세트를 주고받는 건 명절의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2018년 스팸 판매액은 4100억 원. 이 가운데 60%가 명절 기간 선물세트 판매에서 올리는 매출이라고 한다. 캔에 든 가공육 따위가 어떻게 명절 선물이 될 수 있느냐고 여전히 흥분하는 이가 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미원, 설탕, 담배가 명절 선물의 대표 주자였던 시절도 있었다.
 |
| 이 진열대에 ‘엔초비 스팸’을 더하는 건 어떨까? |
한국인의 유별난 스팸 사랑은 외국에선 뉴스거리다. LA타임스, BBC, 뉴욕타임스 등 유수 언론이 한국의 스팸 선물 문화를 기사로 다뤘다. 이들 기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처럼 부유한 나라에서 스팸처럼 값싼 식품이 여전히 인기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팸을 폄하하는 한국인도, 스팸의 인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도 간과한 사실이 있다. 음식의 운명은 탄생과 전파보다 어떤 환경에서 정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스팸의 운명은 2002년부터 달라졌다. CJ제일제당은 김원희 에릭 한예슬 등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배우들을 스팸 광고모델로 기용한다. 그리고 스팸과 쌀밥의 만남을 강조하며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는 기막힌 카피를 선보였다. 정확히 이때부터였다. 돼지고기의 부산물로 만든 가공육에 불과했던 스팸은 순식간에 한국 식문화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밥 김치 스팸이라는 삼위일체는 전국의 수많은 일인가구와 자취생에게 구원의 메시지가 되었다. 그 메시지는 1970, 80년대 최고의 도시락 반찬이었던 ‘분홍 소시지’의 추억을 지워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한국인이게 스팸은 더는 캔에 든 값싼 햄이 아니다.
부산다운 관광 기념품을 생각할 때 나는 늘 기장의 멸치액젓과 스팸의 조합을 떠올린다. 이른바 ‘엔초비 스팸’이다. 소금의 사용량을 줄이고 멸치액젓으로 간을 하고 감칠맛과 풍미를 더한 스팸. 오로지 부산에서만 유통되고 부산에 와야만 구매할 수 있는 스팸. 식품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협업으로 탄생한 관광 기념품. 이 정도면 마케팅 차원에서 충분히 승산이 나온다. 현재의 식품가공 기술로 맛은 얼마든지 원하는 수준까지 구현할 수 있다. 스팸 종주국인 미국에서는 진작부터 초리조, 할라피뇨, 데리야키, 갈릭, 블랙페퍼, 포르투갈 소시지, 칠면조, 베이컨 등 다양한 스팸이 인기리 판매 중이다.
관광은 무엇을 파느냐보다 어떻게 파느냐를 고민하는 산업이다. 관광객의 소비 기준은 판타지다.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고 의미만 강조하면 언제나 실패한다. 세계화를 위해 우리 음식을 외국인의 기호에 맞추는 건 전제부터 잘못된 접근이다. 한국음식은 그 맛을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의 기호에 먼저 맞춰야 한다. 우리 내부에서 이슈가 되어야 외부에서도 이슈가 된다. 내년 이맘때는 따끈한 밥에 ‘엔초비 스팸’ 한 조각 올려 먹는 상상을 해본다. 엔초비 스팸이 성공하면 그 다음은 ‘명란 스팸’이 어떨까? 감성이 이성과 논리를 뛰어넘을 때 판타지가 발현된다. 어묵 하나만 바라보고 있기에 부산의 관광시장은 이미 너무 크다.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