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지나갔다. 부모가 자식을 찾는 ‘역귀성’을 비롯하여 차례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하고 연휴 동안 해외로 떠나는 ‘추캉스’, 혼자 추석을 보내는 ‘혼추족’ 등 명절 풍속도 역시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필자의 어린 시절만 생각해보아도 명절이면 온 가족 친지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부산의 대표 전통시장인 자갈치시장과 부전시장은 제사장을 보기 위해 몰려든 시민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지금은 핵가족과 1인가구의 증가에 따른 합리적인 가치관의 변화로 예전과 비교할 때 많은 절차가 간소화했다.
 |
| 해금 연주 모습. 국립국악원 제공 |
전통악기 가운데 북적거리는 장터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던 악기가 있었다. 유랑 예인이나 풍각쟁이들이 새가 우는 소리, 쥐나 벌레가 내는 소리 등으로 익살스러운 상황을 묘사하는 효과음을 낼 때 쓰던, ‘깡깡이’ 또는 ‘깽깽이’로 불리던 해금(奚琴)이 바로 그것이다. 느리고 점잖은 저음을 선호했던 조선 시대의 정서와는 사뭇 대조되는 해금의 음색 때문에 민간에서는 깡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해금은 6세기 무렵 중국의 소수민족인 해(奚)족의 악기로 고려 시대에 우리나라로 전해진 이후 향악화(鄕樂化)되어 조선 시대에 이르러 궁중음악, 행악을 비롯하여 민속음악에서 무속음악까지 합주에서는 빠지지 않는 약방의 감초와 같은 악기였다. 해금은 두 줄 사이를 활대로 문질러 소리를 내는 찰현악기다. 하지만 활대로 줄을 마찰시켜 내는 소리가 공명통 한쪽을 얇은 오동나무 판을 막은 울림통을 통해 지속음을 내는 까닭에 전통적으로 관악기로 구분되고 관악합주에 편성되는 특징을 지닌다.
20세기 초기까지 해금은 합주에서는 필수로 편성되는 중요한 악기였지만 독주 악기로서는 유랑 예인의 효과음을 내는 용도에 그쳤다. 하지만 1960년대 전통가락인 시나위 선율을 바탕으로 짜인 해금산조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연주 기량과 예술성의 발전도 곁들여지면서 해금은 독주곡으로서 민속악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후 해금을 위한 다양한 창작곡이 작곡됨에 따라 해금의 연주 기법이 발달하게 되고, 대중성을 가미한 많은 음반이 발표되면서 해금만의 음색과 매력으로 21세기 시대감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악기로 대중에게 각광받게 되었다.
서구 문화의 유입과 빠르고 바쁜 삶의 패턴은 우리의 음악 문화도 바꾸어 놓았다. 저음 지향의 음악은 점점 고음 지향의 음악으로 바뀌었고, 느리고 느긋했던 음악은 가사를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속사포 랩처럼 빨라졌다. 빨리 흘러가는 우리 삶의 모습처럼…. 그래서 명주실 두 줄을 움켜잡은 손가락의 장력으로 만들어내는 해금의 소리는 더는 장터의 깡깡이 소리가 아닌, 각박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인의 삶을 어루만지는 힐링의 소리가 되었다. 소리연구회 소리 숲 대표·음악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