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도 멈추지 않는 철도공사 승무원, 고속도로 요금 징수원 파업은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함을 일깨워 주었다. 직접 고용과 차별 해소를 주장하는 그들의 주장과 우리 해기사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한때 해기사는 고임금이 보장되는 선망의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비정규직에다 가족과 떨어져 고립된 해상 근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으로 고통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마저도 한진해운 사태 이후 양질의 해기사 일자리가 상실되면서 국립 해양대 졸업생의 취업률마저 70%에 그친다. 교원 양성기관인 교육대학 등도 취업률이 낮으니 감수할 만하지 않으냐는 시각은 실태를 모르는 것이다. 교원은 원어민 강사 등을 제외하고는 외국인으로 대체할 수 없지만, 해기사의 경우 임금이 낮아도 외국인 해기사가 득세하는 세상이다. 정부의 특단 대책이 없다면, 해운경기가 회복돼 국적선사가 한국인 해기사 고용을 계획적으로 확대하지 않으면 해기사를 지향하는 젊은이의 싹이 마를 것이다.
한진해운과 같은 세계적인 해운기업의 퇴출 조처로 가장 많은 고통을 받은 쪽은 선원이었지만 이들을 위한 직접적인 구제책이 없었다. 한진해운과 같은 우량기업의 실종은 공급사슬을 공유하는 다른 해운 관련 기업의 육상근무 해기사가 실직하는 상태로 이어졌고 이들도 저임금을 감수하며 해상직으로 복귀하였다. 이는 신규 청년 해기사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요즘 해기사는 비정규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선원을 계열 선박관리회사로 이관하고, 고용계약을 승선계약 명목으로 한 뒤 승선해야만 계약이 시작되고 하선과 함께 계약이 종료되도록 했다. 이는 배를 타고 있는 기간에만 고용계약이 유지되므로 극심한 고용 불안정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임기택 국제해사기구 사무총장 등이 모두 승선 경험이 있는 해기사 출신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발전에는 대학 졸업 후 승선 경험을 쌓고 이를 육상의 관련 산업 발전으로 연결해온 해기사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하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데다 체계적인 경력 개발이 불가능한 탓에 의무승선 기간만 채우고 난 뒤 다른 직종으로 바꾸는 사례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가뜩이나 저출산 시대인데, 양질의 일자리 보장 없이는 승선 근무를 원하는 해기사가 사라질 것이다. 이럴 경우 비상시 제4군의 역할을 하는 해기사가 없어지고 해운 연관 산업에 인력 공급이 끊어지며 해양강국이라는 국가 전략의 한 축이 무너질 것은 자명하다. 조선 물류 등 전후방 산업과 상호 밀접한 관계인 해운업에서 양질의 해기사 출신 인력 확보는 해운 조선 등 관련 산업의 국제 경쟁력 차원에서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전후방 연관 산업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시대는 기술이나 기업 구조, 고용과 인구 구성도 모두 근본적 변화가 진행 중인 만큼 우수한 인재가 해운업에 유입되도록 다양한 유인책과 정책적 고려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기사의 비정규직화를 막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우선해야 한다.
그 마중물 역할은 정부의 몫이다. 필자는 해수부 산하에 안정적인 청년 해기사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가칭) 해기사일자리상생기금을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해기사일자리상생기금은 정부가 주도하고 해운기업 노사, 해기사들의 주요 주소지인 부산시가 기금을 출연하여 신규 졸업 해기사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거나 기존 비정규직 선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해운기업에 대하여 2~3년 일정 기간에 걸쳐 임금 차액을 지원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유지를 지원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는 청년 노인 등 취업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지원을 위한 내년도 예산안에 3조 원을 편성하였다. 그중 0.7%인 200억 원 정도의 지원만 해마다 이루어진다면 해기사의 정규직 전환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비정규직 해기사를 양산하는 체제는 해상과 육상을 단절시켜 승선 해기사가 육상 전문직으로서 해운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승선 경험을 가진 해기사가 조선 항만 물류 선박금융 선박관리 해사행정 등 다양한 분야로 제2의 경력을 개발해 나가면서 오늘날 세계 해운의 중심지 영국 런던을 만들었듯이 우리나라의 해양수도이자 동아시아의 물류허브를 꿈꾸는 부산에서 청년 해기사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되어야 한다. 부산시는 중앙부처, 해운기업 노사에 해기사일자리기금 창설을 제안하는 데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